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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시집가는 날
<나카무라 상의 고창살이>
나카무라 기자 / 입력 : 2012년 11월 14일(수) 11:36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여동생이 결혼했다. 동생이라 해도 친동생이 아니다. 한국에 시집 온 다음 친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아가씨가 지난달 결혼했다. 현재 그녀는 충남에서 중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 그녀의 신랑은 경기도에서 일하지만 둘이 제주도출신이기 때문에 결혼식은 제주도에서 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녀의 결혼식에 갔다. 결혼식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 일찍 고창을 떠났다. 고창에서 나온 과일 한 박스를 손에 들고.

제주도 사람들은 한반도를 “육지”라고 불렀고, 육지에 사는 사람들을 “육지사람”이라고 불렀다. 지난해 그냥 혼자 관광객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도와 육지는 결혼에 관한 풍속의 차이가 많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결혼식 전에 하는 축하 모임이 3일이나 계속된다는 것 외에도 여러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 풍속의 몇 가지는 일본의 풍속과 많이 닮았었다.

여기는 지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번에 실제 결혼식에 가보고 알았던 것은, 그 유명하고 대단한 제주도의 결혼식 잔치도 지금은 결혼식장이나 호텔에서 대신하였다. 그리고 피로연을 전날에 해주는 경우가 많아져 집안 식구의 부담이 많이 줄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결혼한 제주도 신부와 필자는 10년 이상 친하게 지내왔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니는 시절에 그녀는 같은 대학교의 학부생으로 입학하였다. 동안인 그녀는 대학생은커녕 중학생같이 어려 보였다. 육지 사람에 대해 긴장하는 그녀에게, 외국인인 필자가 편한 존재였는지 금방 가까워졌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을 매우 예뻐해 줬다. 필자가 저녁 일본어수업에 가야 할 때는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적도 많았다. 그녀는 월급을 받자 바로 우리부부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월드에 갔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이를 백화점에 데려가 가방을 사주었다. 이것은 보통의 “친하다”는 관계를 넘어, 거의 친자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는 이모가 가까이 없다. 그녀는 우리 아이의 이모가 되어줬다. 그녀는 우리 부부가 고창에 살기 시작했을 때도 당연하다는 듯이 바로 얼굴을 보러와 주었다. 그녀는 고창군청 근처에 놓여있는 고창의 캐릭터 모로모로를 보고 “고창의 특산물은 된장이예요? 저것은 메주지요?”라고 그녀가 말했던 말이 인상깊게 남는다. 고인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모로모로를 보면, 메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모양성에 올라갔던 것이 어제의 이야기 같다.

결혼식은 제주시내의 호텔에서 있었다. 신부대기실은 아름다운 신부와 사진 한 장 찍자는 손님들로 넘쳤다. 그녀는 필자에게 “먼 곳에서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녀의 결혼식이 우주에서 했다고 해도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주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 “결혼하면 시댁이 생겨 전처럼 편하게 찾아가기가 어려워지고 신경도 써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고 미안한 듯 말했다. 그것은 시집간 여자들 모두가 갈 길이다.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예의도 지키지 못하면서도 지금까지 뻔뻔하게 살고 있다. 필자는 시집가는 신부에게 앞으로 자신과 자신의 식구만 생각해서 살면 된다고 말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가장 바빴던 신부 주위에서 겨우 사람이 사라졌을 무렵, 필자는 신부와 함께 의자에 앉아 껴안았다. 그녀가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내 앞에 있는 것이 너무나 기뻐 눈물이 나왔다. 우는 모습으로 그녀의 신랑에게 “앞으로 우리 동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여 말했다. 신랑은 매우 성실한 사람 같이 보였다. 필자가 걱정할 일은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주변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왔듯이, 앞으로는 신랑과 시댁 식구를 잘 모실 것이다. 필자는 다만 긴 시간을 친하게 지냈던 사랑하는 동생의 중요한 출발의 날에, 옆에 있고만 싶어서 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고, 그녀의 동료들 대부분이 육지에서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 고창에 돌아왔다. 우리 남편이 신랑인 분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우리 부부처럼 살면 된다. 그렇게 살면 아무 문제없어.” 우리 부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시는 신부 어머니가 “그렇습니다. 맞아요!”라고 함께 웃어줬다. 신부는 제주도의 어머니에게 우리 부부를 “육지의 부모님”이라고 농담으로 말하곤 했다.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부모만한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무것도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고서 엄청 창피할 뿐이다.

신세를 진 사람이 우리 부부이지, 제주도 어머니는 지금까지 옥돔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생선이나 귤을 보내주셨는지 모른다. 원래 필자는 한국에 혈통적인 연고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국에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한국 각 지역에 깊이 지내는 한국사람이 조금씩 생겼다. 어느 때는 일본의 가족보다 더 자주 연락하고 있다. 그 사람들과는 친정식구 보다 강한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이 날은 그 중의 한 명, 한국에서 생긴 사랑하는 동생이 시집가는 모습을 멀리에서 지켜봤던 고맙고 기쁜 가을날이었다.

妹が嫁に行った日

 

妹が結婚した。妹といっても本当の妹ではない。韓国に嫁いでから、実の妹のように親しく付き合ってきた韓国人の女の子が先日結婚したのだ。彼女は現在は忠南で教師をしており、結婚相手の男性も京義道で働いているが、二人そろって済州島出身者であるため結婚式も済州島で行われた。私たち家族は彼女の結婚式に迷わず全員で済州島に向かった。結婚式は日曜だったので土曜の朝早く出発した。高敞産の果物を手みやげに。

 

 済州島の人々は、韓半島を「陸地」と呼び、そこに住む人々を「陸地の人」という。去年ただの観光客として済州島を訪れたとき、バスガイドの女性が教えてくれた。済州島の結婚式は陸地の結婚式とは違い、結婚式前の祝賀宴が今でも三日は続くのだと。その他にも一般的に「陸地」にある習慣と違うものが済州島にあると。その習慣のいくつかは非常に日本の習慣と良く似ていた。ここは地理的な面だけではなく、文化的にも韓国と日本の間に位置するんだなと感じた。ただ、今回実際に行ってみると、前日の前祝いは最近ではすべて式場やホテルで行うことが多いそうで、家族の負担は減っているという。

 

 新婦と私はもう10年以上の付き合いだ。私が大学院に通っている時代に、彼女は同じ大学に学部生として入学してきた。童顔の彼女は大学生どころか中学生のように幼く見えた。彼女はわが家の子供たちをとても可愛がってくれた。私が夕方の日本語講義があるときなどは、家で子供といっしょにいてくれることがよくあった。彼女は給料をもらってすぐ、私たち夫婦に贈り物を贈ってきた。そしてわが家の子供たちを連れて「ロッテワールド」に遊びに連れていってくれた。長男が小学校に上がるとき、デパートに連れていき、学校かばんを選ばせて買い与えてくれたのも彼女である。これはもう普通の「親しい」を越えておそらく本当の姉妹の付き合いに近いと思う。私が海外で結婚したのでわが家の子供たちにとって母方の親戚と呼べる人は近くにいない。彼女はわが家の子供たちにとって長く親戚のお姉ちゃんのような役割をしてくれた。彼女は私たち夫婦がこの高敞に住み始めた頃、当然のようにすぐに遊びに来てくれた。そして大通りに置かれている高敞のキャラクターモロモロを見て「ああ、高敞の名物は味噌だまりなんですね」と言ったのが印象深い。コインドルを全く知らない人がモロモロを見ると味噌に見えるらしいことが分かって大笑いしながら牟陽城に登ったのが昨日の事のようだ。

 

 結婚式は海辺のホテルで行われた。新婦待機室には、美しく装った花嫁と写真を撮ろうとする祝賀客が溢れた。彼女は私に「遠いところ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言ったが、私は彼女の結婚式なら「宇宙でやったとしても行く」と思っていたのだから、済州島くらいなんでもない。彼女は結婚前に私に「結婚してしまったら、嫁ぎ先が出来てしまったら、もう以前のようにこちらに気軽に遊びに来ることが出来ないと思う。」と申し訳なさそうに言った。それはみんなが通る道だ。そんなこと気にすることはない。私自身も人に迷惑を掛けながら、不義理をしながらず太く生きている。これからは自分の家族と、親戚のことだけ考えて生きていけば良いんだと言った。

 

 式が終り、その日一番忙しかった花嫁の回りからようやく人波が消えた頃、私は新婦と式場のソファに座って抱き合った。この子がこんなに綺麗な花嫁さんになったことが嬉しくて嬉しくて涙が出た。その顔のままで新郎に「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と頭を下げた。彼女が結婚相手として決めた人は大変誠実そうな人で私が心配することなど何もない。彼女は今まで回りの人を大事にして来たように、旦那さんとも新しい親戚ともうまくやっていくことだろう。ただ私はこの10年以上の年月を親しく過ごした愛する大事な妹の出発を、一目見たくてそこに来ただけだ。私と同じように思った人が沢山いたのだろう。彼女の友人と同僚たちも陸地から大勢駆け付けてこの日を共に祝った。

 

 私たちは日曜のうちに高敞に戻らないといけなかった。夫は新郎新婦に最後の挨拶で「うちの夫婦のように仲よく暮せばいいんだ。そうすれば何の問題もない。」と笑った。私たち夫婦のことを大変良く思ってくれている新婦のお母さんは「そのとおりです。」と笑った。新婦は私たち夫婦のことを自分の親に「陸地の両親」だと冗談を言っていた。親しくはしてきたが、彼女に母親と呼ばれるほどのことなど何もしてない、だからそんなことを言われると死ぬほど恥ずかしい。お世話になったのはこっちのほうだ。新婦のお母さんが今までどれだけ私たちに海産物だの蜜柑だのを送ってくれたことか。私は元々韓国に血縁はまるでないが、こうして生活する中で韓国各地に一人二人と大変深く親しくなる人が生れていった。時には日本の実の親兄弟よりも頻繁に連絡をとっているかもしれない。彼らとは本当の身内よりも、強い絆を持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時がある。この日はその中の一人である韓国で出来た愛する妹が、嫁に行く日を遠目に見守ったありがたい喜びの秋の日だった。


나카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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