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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全琫準) 장군 탄생 155주년
윤종호 기자 / 입력 : 2011년 01월 17일(월) 15:32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지난 1월 10일(월)은 전봉준 장군 탄생 155주년이었다.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은 봉정의식, 축하공연 등의 기념행사를 준비했지만, 전국적인 구제역 파동으로 잠정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봉준 탄생 155주년을 맞아, 그의 출생과 활동 등을 간략히 돌아보고, 최근 학술대회 등을 통해 새롭게 조명된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 사진’과 관련 논의 등을 소개코자 한다. -편집자 주-

※주요 참고 자료
①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홈페이지
②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전봉준
③전봉준 장군 탄생 155주년 기념행사 자료집 등


   
출생·출생지·가족
1855년(철종 6년) 음력 12월 3일(양력 1856년 1월 10일), 아버지 천안전씨 전창혁(全彰赫)과 어머니 광산김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 녹두(綠豆)는 그 체구가 작아서 붙여진 별호로 이후 녹두장군으로 불린다. 출생지는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설과 ‘고창군 죽림리 당촌’ 설 등으로 논란이 있어왔지만, ‘고창 죽림리 당촌’ 출생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전봉준은 어려서 전주 구미리(현 완주군 봉동읍), 태인현 감산면 계룡리 항새마을(현 정읍시 감곡면)로 이사했고, 18세 때 태인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현 정읍시 산외면), 37세경 고부군 궁동면 양간다리(현 정읍시 이평면)로 이사한 뒤, 조소리(정읍시 이평면)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슬하에 자녀는 2남 2녀로 추정되며, 장녀 전옥례(1880~1970)는 15세에 화를 피해 진안 마이산으로 들어가 김옥련으로 이름을 바꿔 살다, 1970년 스스로 밝힘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활동·혁명·좌절
전봉준은 35세 전후인 1890년경 동학에 입교해, 곧이어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 접주(接主, 포교소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1893년 11월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발통문 등을 통해 1894년 1월 10일 고부농민봉기를 주도한다. 이후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 농민군을 가혹하게 진압하자, 전봉준은 무장(茂長)의 손화중(孫華仲)과 힘을 합쳐 3월 20일 무장기포 후 연이어 백산봉기, 황토현 전투, 전주성 점령 등을 동학농민군 총대장으로 이끌었다. 청·일이 개입하고, 폐정개혁안 등을 수용하자 5월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고 물러난다.

전봉준은 35세 전후인 1890년경 동학에 입교해, 곧이어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 접주(接主, 포교소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1893년 11월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발통문 등을 통해 1894년 1월 10일 고부농민봉기를 주도한다. 이후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 농민군을 가혹하게 진압하자, 전봉준은 무장(茂長)의 손화중(孫華仲)과 힘을 합쳐 3월 20일 무장기포 후 연이어 백산봉기, 황토현 전투, 전주성 점령 등을 동학농민군 총대장으로 이끌었다. 청·일이 개입하고, 폐정개혁안 등을 수용하자 5월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고 물러난다.

이후 9월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여 2차 봉기(9월, 삼례봉기)를 일으켜 서울 등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의 패배(10월), 최후 전투인 태인전투(11월)에서 패배함으로써 농민혁명은 좌절하고 만다.


체포·최후·유시(遺詩)
이어 입암산성, 백양사 등으로 이동하며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동지였던 김경천을 찾아가나, 밀고로 12월 2일 붙잡힌다. 순창, 담양, 나주, 전주를 경유해 서울 일본 영사관 감방에 수감된 후, 1895년 2월~3월 5차례 심문을 받은 뒤, 3월 30일 손화중, 최경선 등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니, 이때 나이 41세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나는 바른 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라고 개탄했고, 죽음 직전 다음과 같은 유시(遺詩)를 남겼다고 한다.

時來天地皆同力 때가오니 천하가 모두 힘을 같이 했건만
運去英雄不自謀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할 바를 모를 내라.
愛民正義我無失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나에게는 과실이 없나니
爲國丹心誰有知 나라를 위하는 오직 한마음 그 누가 알리

이후 많은 역사가들은, 전봉준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최고지도자로, 혁명가이자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다. 

 

   

새롭게 밝혀진, 전봉준 사진

작년 10월 22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한국사연구회와 공동으로 ‘새로운 자료를 통해 본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적 의미’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 개회식 자료소개에서 김문자(金文子, 奈良女子大學) 씨는 ‘전봉준의 사진과 村上天眞(무라카미 텐신)’이라는 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서 전봉준 장군의 유일한 사진자료이자, 통상 역사교과서 등을 통해 ‘(서울로)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 사진으로 알려진, 위 사진의 촬영시기와 촬영경위·상황, 사진사 등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밝혔다.


촬영시기·상황

김문자 씨 발표자료에 따르면, 도쿄에서 간행된 『메사마시신문』 391호(1895년 3월 12일) 제5면에 ‘경성단신(京城短信, 3월 2일발)’으로 게재된 ‘전봉준을 촬영하다’라는 소제목을 붙인 기사에서, 무라카미 텐신은 다음과 같이 촬영시기와 상황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일시 전라도지방에서 몹시 창궐했던 동학당(東學黨) 중의 수괴 전봉준(全捧準, 全琫準의 오기), 최경선(崔慶善), 손화중(孫化仲, 孫華仲의 오기)을 비롯한, 그 외 6명은 일본병이 호송해와서 우리나라 영서(일본영사)에게 일단 취조를 받은 다음, 지난 27일(1895년 2월) 법무대신에게 인도되었다. 수괴 전봉준 및 최경선 두 사람은 발에 중상을 입어 신체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영사는 의사를 조치하여 정중하게 치료하도록 했으며, 법무아문(구한말 사법관청)으로부터 회송해 온 들 것에 태워 호송했다.

나(무라카미 텐신)는 미리 그들(전봉준 등)에 대한 촬영 건을 미리 영사에게 조회(照會)를 해 두었기 때문에, 즉각 달려가서 그 같은 사실을 봉준(전봉준) 등에게 알렸더니, 그들 얼굴 가득히 희열을 보이면서 들 것 그대로 찍겠는가 라고 물으면서 스스로 명을 내려 일산을 치우게 했다. 그러나 촬영하는 동안에도 다친 곳이 아픈 모습이었다. 듣건데 봉준은 전라도 태인의 일개 농민으로 금년 40세로 평소에 대단히 학문을 좋아하고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믿었으며, 동학도의 무리에 들어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지금 조선 사람들의 마음은 물 위에 뜬 것 같아 통일되지 못하고 관리들도 회포하기 그지 없어 광정(匡正, 바로잡아 고침)되지 못하고 있는데, 동학당의 교지(敎旨)는 자기를 바르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비치며, 인민의 협동일치(協同一致)를 주(主)로 하므로 인심을 바루고 이폐(吏弊)를 제거하려면 아당(我黨, 동학당)의 결합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가 동학당에 입당한 초지(初志)이다.(이하 생략)”

이 내용을 참고했을 때,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 사진은, 1895년 2월 27일, 서울의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법무아문으로 인도되기 직전에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이 우치다(內田) 영사의 허가를 받아 촬영한 것이다.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
촬영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인 전봉준을 사진이라는 역사자료로 남긴 이는 무라카미 텐신(본명 코지로 = 幸次郞)이라는 일본인으로, 조선인 사진사가 없던 시대에 조선에서 개업한 일본인 사진사 중 한 사람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진사였고, 통감부 어용사진사 지위에 올랐던 이다. 이 사진은 그가 조선에서 활동하던 초기에 촬영한 사진이며, 이후 고종과 순종이 서양식 군복을 착용하고 1900년경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등 대한제국기 황실사진 몇 점 또한 무라카미 텐신의 사진이라고 한다.

문병학 시인의 축시
문병학 시인(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은, 지난 10일(월) 구제역으로 잠정연기된 ‘전봉준 장군 탄생 155주년 기념행사’에 전봉준 장군을 기리는 아래의 축시를 보내왔다고 한다.

전봉준의 눈빛
저 들판 끝 바람 앞에 선 사내 하나 앙상한 뼛골로 우뚝 서있는, 서서 죽은 사내의 정수리에 들입다 꽂히는 바람아 네가 졌다 찬찬히 보아라 제 몸 스스로 식혀 정수리로부터 차가운 피 맑게 돌리며 두 눈 번쩍 뜨는 그는 너의 등덜미를 내내 주시하고 있다.

윤종호 기자

윤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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