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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 그녀에 대한 회상
<광복절 특별기고>
김경식(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기자 / 입력 : 2012년 08월 27일(월) 10:38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8월 14일자 한 신문을 보던 중 유독 마음이 끌리던 한 기사가 눈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국적인정증서를 받던 13명 독립유공자의 13명 자손들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었다. 금년이 광복 67주년, 언제나 광복절 이맘때면 주권상실기 일제에 항쟁하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지만, 국적인정증서를 받는 그 기사 그 자녀들의 사진은 나에게 하나의 회상의 념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20세기가 다해가던 서기 1998년 8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 오후 꼬불꼬불 골목길을 빠져나와 버스길까지 따라 나오며, 상지에 오면 꼭 들려주라며 손을 꼬옥 잡아주던 사십대 초반의 그녀, 그 녀는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기만 한다.

서기 2천년을 전후한 몇 년간은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를 쓰기 위한 자료수집차, 여름방학이면 매년 중국 동북지방에 머물던 그 때였다. 그녀를 만난 것은 흑룡강성 상지시(尙志市)였다. 할빈부터 동행했던 할빈시 교육학원 김봉집 교수와 유일수 선생(서기 1921년생, 독립투사, 교장 역임), 지금은 작고하고 고인이 됐지만 상지조선족중학교 김동경 교장을 찾아, 상지중학교와 그 주변의 항일투쟁에 대한 담론과 자료를 얻은 뒤, 그 녀의 집을 방문한 건 점심 후였으니, 그 날 오후 1시경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 방문했다던 유일수 선생의 뒤를 따라, 시 변두리 영림소 부락에 위치한 그 녀의 집을 여기저기 찾다가 그 집을 찾은 것이다. 그녀의 집은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자그만한 미나리밭 가운데 난 10여미터 길 건너 집, 사실 그대로 판자 집이었다. 그 집 주변 모두가 판자 집이었다. 그 녀의 집에 가니 놀라기보다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만의 경우만도 아니었다.

유일수 선생의 소개를 들으니 바로 그 집은 항일독립투사 김규식(金奎植) 선생의 장남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가? 김규식 선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김규식 독립운동가와는 동명이인이었다. 김규식 선생의 장남은 알고 보니 유일수 선생의 동지였다. 그 분은 중풍으로 겨우 앉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었다. 김규식 선생의 혈육이라고는 중풍으로 누워있는 김규식 선생의 장남 내외분, 그리고 손자 내외였다. 그리고 김규식 선생의 증손자는 김동경 교장의 주선으로 상지조선족중학교를 마치고 외지에서 취업해 있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예들은 가난의 역경에 헤맨다던 말로만 듣던 그 현실을 필자는 침통하게 체험한 첫 경험이었다.

김규식 선생 그분은 서기 1919년 3·13운동(중국 동북지방의 3·1운동) 직후, 중국 동북지방(만주)에 흩어져 있던 대종교인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위하여 조직된 ‘정의단’(正義團)의 한 중심인물이었다. 선생은 광복 후 당시 공산당 내부의 갈등에서, 동족의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다고 그의 장남은 증언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김규식 선생의 장남과 독립운동 자료에 대한 많은 담론과 자료 출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귀중한 자료를 얻었던 것은, 상지시 변두리 조선족 마을 중 마을 이름 끝자에 우리의 전통협동체인 ‘계(契)’자를 부친 마을이 ‘제일 계’ ‘제2 계’ 마을 식으로 13계 마을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합동하여 조선족 중·소학을 설립했다는 그 사실을 그 다음 날 확인한 것 이었다.

그런데 김 선생 댁을 방문한 그 시간부터 담론하던 중 옆에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시종 내내 필자에게 증오의 눈치와 싸늘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가 하도 민망스러웠던지 유일수 선생은 필자를 가리키며 “이 분은 민족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라고 말을 하며, 그러지 말라고 하자, 그때서야 표정이 달라지며 우리의 담론에 끼어들며 말을 했다. 그녀가 전해 주는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저는 조선족으로 생활이 궁핍하여, 작년에 한국에 가 막노동을 하며 몇 달간 있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죄목으로 강제추방 당했습니다. 저의 시조부가 김규식 독립투사라 말을 하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의 사정을 이해한 듯 어느 경찰관 아저씨가 불법체류자 강제송환자 중 저만을 별도로, 서울에서 김포공항까지 택시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시조부는 독립을 위하여 투쟁을 했는데 조국은 이렇게 독립운동가의 유족을 냉정하게 대하는가, 난생 처음 갔던 조국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비행기 안에서 한 없이 울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필자 역시 그 녀의 말을 들을 때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집을 나설 때 잘 가라며 눈물을 머금던 병석에 누어있던 김규식 선생의 장남, 골목길 끝까지 전송해주던 그 며느리, 그리고 버스길 까지 따라 나오며 상시에 오시면 꼭 들려주라며 손을 꼬옥 잡아 주던 손부,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기만 하다.

필자는 서기 2004년에 서기 1996년부터 7여년에 걸친 조사·연구를 통해 <재중한민족 교육전개사>(상·하권, 총1480면; 서기 2005년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선정)를 출간한 바 있다. 필자는 동서 상권 457면에서 그 녀와 만났던 장면을 묻어 두었다. 그 건 한 독립투쟁자 후예의 힘겨운 삶의 장을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과거사 정리, 정리 하지만 항일민족투쟁에 대한 자료의 정리와 세월따라 잊혀만 가는 독립유공자들의 발굴, 그리고 특히 중국·소련의 연해주지역에서 활약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의 국적인정을 계속적으로 전개해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국에서 항일독립투쟁을 하고 그 유족들은 국적심사를 받아야 하는 고달픈 우리 민족의 현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또 하나의 문제는 국내에서도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계속 발굴하여 독립유공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지리산 도로건설에 참여했다는 한 후배는, 지리산 산길 도로변에서 토종닭을 어렵게 경영하고 있던 한 독립유공자의 장남이 세상을 등진 채 울분을 토로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고, 술 한 잔 더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울적했다. 독립유공자의 발굴과 그 보호책,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김경식(연정교육문화연구소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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