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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현감 이람(李覽)과 정유재란
이병열(고창문화연구회 기자 / 입력 : 2013년 01월 02일(수) 13:51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정유재란 당시 무장현감은 이람이다. 이람은 1550년(명종5, 경술)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경명(景明), 본관은 전주이며, 선조(宣祖) 6년(1573) 계유(癸酉)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는 42세인 선조(宣祖) 24년(1591) 별시(別試)의 병과(丙科)에 합격했다. 무장현감 이람에 대한 기사는 왕조실록에 여러 곳이 보이며,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전인 선조 27년(1594) 8월 12일(정사) 기사이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또 본청(本廳)의 전종사관 이람이 초여름에 새해의 곡식을 수취하는 일로 호서(湖西)에 내려갔으니 장차 진휼하는 일에 이어 사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가을이 깊어도 아직도 들여온 것이 없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정유재란이 발발한 선조 30년 정유(1597) 10월13일 전라관찰사 황신이 관아를 버리고 도망한 수령에 대하여 황신이 보고하였다. “무장 현감(茂長縣監) 이람은 경내에 피신했다가 적이 고을에 들어온 후에는 섬 속으로 피란했으며” 또한 선조 30년 정유(1597) 10월19일의 호남지방의 수령들의 모습이 언급되어 있다. “삼가 전라감사 황신(黃愼)의 장계를 보건대, 도내의 수령들이 도망하지 않은 자가 없어 호남 천리가 모두 살육을 당했으니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청컨대 모두 잡아다가 국문해서 율에 따라 죄를 주어야 합니다.”라는 선조실록의 기록이다.

또한 선조 30년(1597 정유) 12월 9일에는 도망친 수령들의 정상참작·재기용 등에 대해 비변사에서 아뢰는 내용이 있다. 이날의 내용을 보면 첫째, 적들이 밀려와서 인민이 뿔뿔이 달아날 때에 끝내 제 고을을 지키지 못하는 정세였다. 둘째, 관찰사와 사명(使命)이 멀리 한 구석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전해올린 장계가 하나하나 다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셋째, 무인(武人)은 전장에 내보내시어 스스로 공을 세우게 하여 죄를 용서해주었다. 넷째, 위와 같은 상황에서 각 사람들의 범죄도 그다지 무겁지 않으니 동일하게 죄를 심판하여 처단하였다. 다섯째, 도망한 음관에 대해서는 엄벌하였다. 위의 기사에는 이람의 죄상이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볼 때 이람은 다른 현감처럼 도망을 가거가 피신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1597년(정유) 9월 22일(경술, 양력 11월 1일) 난중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날 이순신장군은 “나주목사 배응경과 무장현감 이람이 와서 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람은 이미 남원성전투(1597년 8월12일~8월16일)에서 조·명연합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왜군은 1597년 9월 15일 정읍에 도착하여 전라도 각 지역의 침공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람의 피신에는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왜군의 군세를 무장현의 군사력으로는 그가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논하고자 이순신을 찾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전라감사 황신의 장계는 동년 10월 13일 도착하였다. 전라감사는 전라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서울까지 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즉 전라감사 황신이 장계를 올린 시기와 이람이 이순신장군을 만난 때는 비슷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순신장군을 만나 군사회의를 했다 하더라도 이후 이람의 행적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람이 자리를 피해 도망을 갔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그런데 이람은 정유재란 이후에도 계속 승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선조 32년(1599) 5월 27일(갑술)에 이람은 예조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예조정랑은 조선시대 예조(禮曹)에 둔 정오품(正五品) 관직이다. 현감은 종6품 외관직(外官職)으로 현령(종5품)이 관할하는 현보다 작은 고을의 원님이다.

선조33년(1600) 3월 25일(무진) 성균관 관원이 지관사(知館事)의 의견으로 와서 아뢰기를, “본관(本館)의 유생(儒生)들이 성묘(聖廟)를 중건하는 일 때문에 미폐(米幣)와 잡물(雜物)을 거두어 모았습니다. 역사(役事)를 시작할 적에는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감독해서 책성(責成)하게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다만 기와를 굽고 재목을 모으는 등의 일은 반드시 제때에 조처해야 만이 가을에 역사를 시작할 수 있으니, 우선 관원(館員) 가운데 사예(司藝) 이람(李覽), 직강(直講) 류담(柳潭), 전적(典籍) 김정일(金鼎一)에게 전적으로 담당시키되, 일이 끝날 때까지 옮기지 않도록 하여 그 일을 중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전교하기를, “시비(是非)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성묘는 마땅히 국가에서 지어야 하는 것이다. 유생들이 어떻게 사사로이 지을 수 있겠는가. 설사 짓는다 하더라도 마땅히 차제(次第)가 있어야 할 듯하다.”하였다.

무장현감 이람은 정유재란이 끝난 2년 만에 종6품에서 정4품인 사예까지 승진하였다. 이는 첫째, 이람이 왕족인 전주이씨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둘째, 임진왜란 당시 그의 과실이 그리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이병열(고창문화연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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