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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마을은 마한 모로비리국의 국읍(國邑)으로 추정
이병열(고창문화연구회 기자 / 입력 : 2012년 09월 30일(일)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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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열 사무국장
모로비리국의 국읍에는 천제를 지내는 제단이 존재

소도에 대한 정의는『삼국지(三國志)』위지 한전에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라고 전한다. 언어학적 소도는 “신단(神壇)의 의미인 ‘수두’나 높은 지대의 의미인 ‘솟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솔터의 영부(靈府)에 세워지는 ‘솟대’·‘솔대’·‘소줏대’·‘수릿대’ 등으로 불리는 간목(竿木)의 ‘솟·솥’은 가마 속에서 물이 오를 때 용출하는 뜻이라 한다. 즉 ‘소·솟·솥’은 ‘길게 또는 곧게 뻗은’이라는 의미이고, 대는 ‘간(竿)’이므로, 소도를 입간(立竿)이라 한다”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소도는 현재 우리 민족의 민속에 나타나는 세 종류의 장간(長竿)을 의미하는데, 첫째는 가정에서 경사나 기도를 드릴 때에 임시로 세우는 신간이요, 둘째는 마을의 동구에 건립하는 ‘솟대’·‘거릿대’·‘수살목(木)’ 등이고, 셋째는 등과자(登科者)가 자기 문전이나 산소 또는 마을 입구에 세우는 화주(華柱)이다.

소도는 하늘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

소도에 대한 기록은『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진서(晉書)』등에 보인다. 이들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한인들은 항상 오월과 시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으로 보아 농경의례의 하나이다. 둘째, 여러 국읍에는 각기 한 사람이 천신의 제사를 주재하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부른다. 이는 천군이 제사장의 신분이라는 뜻으로 소도는 하늘님께 제사를 거행하는 제천의식이다. 여기서 천군인 임금은 태양신 니마(임)와 태음신(地母神) 고마(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셋째,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하고, 소도를 만들어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방울은 환웅이 이 땅에 신시개천을 열 때, 환인에게 받은 3대 신물인 거울, 방울, 검의 하나이다. 북은 하늘의 소리를 상징하고, 방울은 땅의 소리를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신물이었다. 이는 소도가 천신과 지신을 연결되는 장소이고, 그 매개체가 바로 신간(神竿)이었다. 넷째, 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들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않았다.

소도는 태양숭배사상에서 시작

소도의 어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도는 태양을 지칭하는 살(아래아 살)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살은 태양의 빛이고 생명의 원초적인 힘을 의미하며 가늘고 긴 뾰족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살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육체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것이며, 사람도 삶도 모두 살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쌀(米)도 살에서 변화됨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은 살의 모음교체에 의해 나온다. 우리의 역사와 항상 함께한 만주의 여진족들은 신과 교통하는 사람을 샤만(薩滿)이라 하여 태양인 살의 어원을 살리고 있다. 태양을 지칭하는 살은 ‘ㅜ’계로 변형되어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정수리, 독수리, 시루떡, 수릿날로, ‘ㅗ’계는 솔대, 솔터(蘇塗), 솟대, 솔개, 소리개, 소리, 솔나무 등으로 다양한 어의로 파생되었다. 위에서 언급된 소도와 관련된 용어들이 이와 같이 태양을 지칭하는 ‘살(아래아 살)’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또한 우리 선조들들은 숭조(崇鳥)사상과 태양숭배 사상을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에 태양인 ‘아래아 살’이>  살이〉사이〉새가 된 것이다. 이렇듯 살로 표현되는 태양의 의미는 솟대나 당산에 새로 나타난 것도 태양숭배사상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논리적 비약일진 모르겠으나 도산리고인돌이 나는 새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도산리고인돌을 자세히 보면 새가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활짝 편 모습과도 흡사하다. 우리 한민족이나 우리와 유사한 북방 민족들은 새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하여 매우 신성시하였고 숭배한 것이다. 솟대는 물론이고 능, 관아, 향교 등의 입구에 있는 홍살문과 일본신사 앞의 도리(鳥居)는 새를 상징한다. 일본신사의 도리는 새가 쉬어가라는 뜻이며, 천(天)자를 닮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솟대나 홍살문 및 도리의 새는 오리나 삼족오(三足烏)였다. 삼족오는 대표적인 고구려의 상징인데, 일본축구대표팀은 상징으로 삼족오를 선택했다. 이는 태양을 숭배하는 쥬신족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도산리고인돌의 형태는 새 뿐만 아니라 태양신과 태음신인 땅신(地神)이 하나 되는 교합(交合)의 모습으로도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남성격의 태양신을 맞아들이는 여성의 생식기 모습으로도 보인다.

소도지역은 원구(圓丘, 圓壇)의 땅

소도가 개최되는 시기는 단오절 또는 수릿날이라 부른다. 수리란 말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원은 살이지만, 의미는 고(高)·상(上)·신(神)의 옛말이고, 솟대는 땅의 정수리가 있는 곳에 세우는 대를 지칭한다. 우리 민족이 단오절을 ‘수릿날’이라 부르는 것은 ‘소도제’의 신일이 일년 중 가장 음기와 양기가 성한 날로 정수리에 비유하여 한해 농사를 좌우하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솥을 뒤집어 놓인 모양의 땅을 명당이라 한다. 특히 이곳은 ‘솟은터’로 뭔가 용출하는 곳이며, 지형학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인 지반이다. 이러한 터에 대한 의식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동북지방의 제민족들도 영혼을 상징하는 사람의 정수리와 같이 가마무늬가 있는 솔터와 같은 원구(圓丘, 圓壇)를 대단히 신성시했다. 따라서 소도는 부족국가에서 천군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장소이며, 신전과 같은 종교적 위엄을 가진 곳이었다. 그 후 국가권력이 확립되면서 소도도 정치적 중심지로 그 위상이 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도가 역사적으로 종교와 정치 중심지에서 행해진 제천의식이라면, 이러한 행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당시 선사인들은 고인돌이나 선돌을 세울 때, 제사장인 천군에 의해 입지가 선정되어 세워졌을 것이다. 특히 부족국가시대 이후 국중대회로 진행되는 제천행사의 시설물들은 그 어떠한 곳보다 심사숙고하여 선정하였을 것이다. 선정된 장소가 신령스러운지,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인지, 홍수가 범람하여 휩쓸리지는 않은 지역인지 등등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선사인들은 천제단과 같은 시설을 조그만 한 야산이나 구릉지역에 입지시킨 것이다. 야산이나 구릉은 물의 범람으로부터 피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곳은 땅의 모양이 대체로 원구형으로 태양의 모양과 비슷하며, 주변의 마을이나 벌판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국읍의 제천행사 건축물은 도산리고인돌과 같이 어느 정도의 큰 규모로 축조되었겠지만, 각각의 마을에서는 돌이나 나무를 세워 작은 행사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을마다 세운 것이 선돌이 되고 솟대가 된 것이라 추정되며, 선돌도 엄밀한 의미에서 솟대라 할 수 있으며, 솟대는 소도의 화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로비리국의 족장이나 권력자들이 국읍에 모여 국읍 주민들과 도산리고인돌에서 국중대회를 마치면, 족장들은 각자의 마을에서 규모가 작은 천제가 아닌 마을단위의 소도행사를 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계승발전 되어 지금의 마을 당산과 당산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불교와 유교가 우리 민족에게 전래됨에 따라 제례의식의 원형도 조금씩 종교의례에 맞춰 변화되었을 것이다.

도산리 인근은 넓은 충적지와 군사방어시설이 존재

도산은 동쪽에서 고창천이 흘러들어오고, 남쪽에서 고수천이 흘러 마을 앞에서 합수한다. 합수된 고창천은 다시 서쪽으로 가다가 남쪽에서 흘러오는 주천천과 갑평에서 합류하여 북으로 흘러 곰소만으로 유입된다. 도산마을은 고수천과 고창천의 두 하천에 의해 발달한 비옥한 범람원지대를 일찍이 개간하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마한의 모로비리국 사람들은 도산을 중심으로 고창천과 고수천, 그리고 주진천 변의 습지를 조금씩 개간하면서 삶의 공간을 확대하고 생산력을 증대하였다.

도산마을의 뒷산은 원래 원산(圓山)이라 하였으며, 또한 하천이 환포(環抱)한다하여 환계(環溪)라고도 불렀다. 이는 아마도 천제(天祭)를 지내는 마을 동산이 원형을 이루고 있기에 둥근산이라는 뜻의 원산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둥근산의 동쪽의 도산은 북서계절풍의 차가운 바람도 피할 수 있는 곳에 입지하였다.

인근의 태봉은 위의 세 하천이 감싸 흐르고 있고, 고창의 높은 산세들이 주위를 감싸주고 있는 분지의 중심에 있는 야산이다. 즉 태봉(99m)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위의 경관을 전부 조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봉 옆에 어느 시기의 성인지는 모르지만(최소한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되는) 토성(土城)이 있다. 태봉산성은 수많은 골들이 태봉 깊숙이 발달해 있어 적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도산마을은 태봉산의 토성과 능선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위급한 상황에는 피난처가 되었을 것이다.

도산마을 주변 500m 이내는 고분과 고인돌이 없어

한편 봉덕리 일대는 수많은 고분과 고인돌이 그 양이나 질에 있어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산리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반경 약 500m 이내에는 고인돌이나 고분(삼국시대 이전의 분묘)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도산리고인돌 주변에 고인돌 몇 기가 있지만 이를 묘로 보기보다는 제천행사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놓거나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 여겨진다. 도산리고인돌 주변의 고인돌과 고대분묘는 주로 서쪽과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에도 고창천을 건너 죽림과 상갑의 고인돌이 수백기가 조성되어 있다. 즉 아직까지는 고고학적으로 도산리고인돌 주변 반경 500m 안에 삼한-백제 이전의 고분이나 고인돌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도산마을 500m 주변에서는 마한시대부터 백제시대의 고분과 고인돌이 발견되어 이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능이나 묘는 풍수적 결함을 비보해주는 기능도

대체로 국도(國都)에 있어 국왕의 묘는 살고 있는 곳의 서쪽에 조성하는 특징이 있으며, 풍수적으로 결함(虛)이 있다거나 비보(裨補)할 필요가 있을 때 분묘를 조성하여 인위적으로 국도를 보호하기도 한다. 또한 능은 왕성이나 도성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하였다. 예를 들면, 공주의 송산리고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왕성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에 있었으며, 부여의 능산리고분도 동쪽 멀리 있는 나성에 주변에 축조하였다. 물론 능산리고분은 부여의 동쪽이 풍수적으로 허하기 때문에 나성 앞에 축조하였다. 고분은 유사시 군사적으로 다양하게 이용가능하다. 도산리의 고분은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우평리와 경계지역에 있고, 서쪽으로 약 500m지점에 만동과 부귀 마을에 고분이 있다. 우평리 경계 고분은 풍수적으로 허한 남쪽의 비보풍수의 고분이자 멀리 고수천 일대를 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만동과 부귀 고분은 서쪽의 풍수적 비보와 유사시 태봉산성을 지키는 군사적 성격 및 고창천 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시설로 추정된다. 태봉산성으로 통하는 입구의 청솔제와 오향실의 골은 태봉산성 바로 아래까지 바로 연결되는 중요한 골이다. 이러한 골 앞에 있는 봉덕리, 도산리, 만동 고분은 골 앞에 있어 주위를 조망해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군사전략상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삼한시대는 삼국시대처럼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기가 아니므로 산성의 발달은 미약했지만 자체적으로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해 태봉산성과 같은 성이나 책(柵) 등을 세 웠다.

도산마을은 모로비리국의 국읍(國邑)으로 추정

한편 도산마을은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각종 생활토기들인 개배나 연질토기, 경질토기편 등이 발견되고 있어 생활공간으로서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즉 도산마을이 마한의 국읍(國邑)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도산리고인돌 주위의 반경 500m 안에 고분이 없다는 점, 신앙유적인 천제단이 있다는 점, 군사방어시설인 태봉산성이 있다는 점, 도산마을 주변에 넓은 충적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도산마을에 삼국시대 이전의 많은 생활토기들이 발견된다는 점으로 보아 도산리가 마한의 모로비리국 국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라 생각한다. 따라서 도산리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도산마을이 마한 모로비리국의 국읍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병열(고창문화연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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