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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까지 기록된 약재 정읍지황이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향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8월11일 옹동면 전통생활문화관과 지황 품종 전시포에서 진행된 현장 심사에 이어 8월13일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재배농가·가공업체·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산업화 전략을 공유하며 지정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역사·산업·문화가 교차하는 지황 산업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현장에서 짚어봤다.
유산으로 확인된 역사, 제도화로 나아가는 산업
8월11일, 정읍시 옹동면 전통생활문화관과 지황 품종 전시포에서 ‘정읍지황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위한 현장 심사가 진행됐다. 자문위원과 관계 공무원, 지황 재배농가 등 30여명이 참여한 이날 현장조사는 정읍지황이 농업유산으로서 지닌 역사성·전통 재배법·경관 자원 등을 직접 점검하기 위한 절차였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제도는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30조의2에 근거한 제도로, 지정 대상은 단순 생산물이 아니라 문화·생태·경관 요소를 복합적으로 보유한 농업자원에 한정된다.
현장에서 심사단은 고려지황을 포함한 11종의 품종과 재배 방식, 숙지황 가공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자료와 실물, 시연을 함께 검토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진상품 약재로서의 위상, 옹동·태인·칠보면 일대의 맞춤형 토양과 기후 조건, 전통 재배기술의 지역 전승성은 모두 ‘역사성’과 ‘지속성’의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전통생활문화관과 연계된 경관 요소, 품종 다양성도 현장 조사단의 주목을 받았다.
세미나에서 확인된 과제와 구조
이틀 뒤인 8월13일, 정읍시는 정읍시농업기술센터에서 ‘정읍지황 융복합산업 활성화’ 세미나를 개최하며 산업 측면의 전략과 과제들을 공유했다. 현장에는 재배농가, 쌍화찻집 운영자, 제조가공업체, 학계 전문가, 유관기관 실무자, 시청 담당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는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추진계획 ▲지역 농산물 사용 인증제 이해 및 도입 사례 발표로 구성됐으며, 이후에는 종합토론을 통해 정읍지황 산업 전반의 문제 구조가 심층적으로 논의됐다.
토론 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품질 기준이 없어 가공 단계에서 정읍지황 명칭이 혼용되는 문제. 둘째, 재배농가의 생산 안정성과 소득 보장 체계 부족. 셋째, 공식 인증제 부재로 인한 시장 신뢰 저하. 넷째, 유산 지정을 전후해 관광자원과 산업정책이 연계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 참가자들은 “지황 산업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선 국가의 제도적 보증이 필요하다”며, “정읍지황의 가치를 역사와 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농업유산, 산업화 전략과 만나다
정읍시는 지황 산업에 대한 제도적 준비를 장기간 축적해왔다. 1992년 지황 주산단지로 지정된 이후 2015년에는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을 등록했고, 2022년부터는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조성사업을 통해 6차산업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생산 기반-브랜드 제도-산업 융합까지 이어지는 축적된 행정력이 이번 유산 지정 추진의 핵심 배경이다.
유호연 부시장은 세미나에서 “정읍지황은 농업과 산업,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복합 자산”이라며 “유산 지정은 단순히 명예가 아닌, 제도 기반 위에서 지역 산업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 하헌준 기술보급과장도 “올해 안으로 지정이 성사된다면 지역경제와 농촌관광 활성화에 실질적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며 “정읍지황의 산업적 확장성을 전국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김호성 재배농가는 “유산 지정이 판로 확대와 생계 기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며 “농가들의 자긍심도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 지정이 열어줄 세 갈래 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면 첫째, ‘역사성’이 제도적으로 공인돼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다. 둘째, 농업·관광 융복합 사업을 위한 국비 지원 통로가 확보돼 농촌경제 파급력이 커진다. 셋째, 정읍지황의 재배·가공·유통 전 과정이 문화 자원으로 관리돼 생산 안전망이 강화된다. 이러한 가능성은 현장 심사와 세미나에서 제기된 품질·신뢰·소득 삼각 과제와 맞물려, 지정 이후 실행 로드맵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제도·문화·경제가 만나는 농업유산의 조건
정읍지황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것은 곧 하나의 농업산물이 지역 정체성의 주체로 재정립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 심사와 세미나가 끝난 지금부터가 실질적 과제의 시작이다. 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단지 보존이 아닌 체계적 관리와 운용이 필요하다. 재배 기준, 품종 보존, 가공 표준, 교육 전승, 경관 유지, 농촌관광 연계 등 각각의 실행 전략이 정교하게 구축돼야 한다. 제도만 있고 운영이 없으면 지정은 무의미해진다.
정읍시는 지리적표시와 융복합단지에서 확보한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는 그 체계를 유산관리로 통합하는 단계를 마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시 행정, 농가, 가공업체, 지역사회 모두가 주체로 연결되어야 한다. 유산은 유물과 다르다. 살아 있는 산업, 움직이는 문화로 작동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자산이 된다. 정읍지황의 미래는 제도 그 자체보다, 그 제도를 통해 어떻게 지역경제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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