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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의 유세 현장에서 마지막 발걸음
3선 국회의원이자 행정가로 지역과 중앙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천해온 유성엽 전 의원이 6월24일 새벽 소천했다. 향년 66세. 유 전 의원은 지난 5월3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선거대책본부 노인위원장 자격으로 전북 진안군 유세 현장에서 급성 뇌출혈로 쓰러진 뒤, 전주 대자인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가까이 투병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빈소는 정읍장례문화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26일 아침에 진행됐다. 유족으로는 딸 유주연·자영·지원 씨와 동생 유재도·재길·재선 씨가 있다.
■행정과 정치, 정읍에서 시작된 여정
정읍 옹동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전북도청 문화관광국장, 경제통상국장,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실무와 정책, 행정과 정무의 현장을 두루 거쳤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정읍에 출마해 당선됐고, 19대 역시 무소속 재선에 성공하며 지역 정치 지형을 흔들었다.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3선 고지에 올랐다. 3선 중 두 번을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은 호남 정치사에서도 드문 이력이다.
■현장에서 답을 찾다: 실천으로 만든 정치
유 전 의원의 삶은 현장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완성됐다. 1999년 겨울, 옥정호·부안댐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문제로 주민 갈등이 심했던 현장에 전북도 환경보건국장으로 직접 발걸음을 옮겼고, 성탄절 눈보라 속에서도 난방도 되지 않는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밤새 들었다. 결국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며 이 사례는 행정안전부 ‘히트행정 10선’에 선정되었다.
정읍시장 재임 당시에는 전국 최초로 구절초 축제를 기획해 지역 대표 관광자원으로 육성했다. 동시에 공정한 인사제도 개편과 청렴도 제고, 대외 협력능력 강화 등을 추진하며 도내 자치단체 중 최고 평가를 받았고, 내부 공직사회로부터도 신뢰를 회복했다는 평을 얻었다.
■기차로 출근한 의원: 약속은 행동으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유 전 의원의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2008년 국회 입성 후 그는 ‘시민의 힘으로 당선된 이상, 시민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서울 국회와 정읍을 기차로 오가며 출퇴근했다. 3년간 이어진 이 행보는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회자된다.
좌우명인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는 문장은 그의 행보에 오롯이 반영됐다. 늘 낮은 자세로, 그러나 중심을 잃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했던 정치인의 모습은 지역사회는 물론 동료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깊이 각인돼 있다.
■법과 제도로 남긴 역사적 기억의 토대
20대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전통문화 보존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서예계의 오랜 숙원이던 ‘서예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2018년 발의해 국회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예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한 의미 있는 입법이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도 깊이 관여한 고인은 정읍·고창 지역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국회 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희생을 재조명하고 국가기념일 제정 및 유족 지원 근거 마련 등 후속 입법 논의에 앞장섰으며, 정읍시의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공원 조성 사업에 힘을 보탰다. 그는 “역사의 정의는 기록이 아니라 제도에서 완성된다”는 소신으로, 전통과 저항의 가치를 정치와 행정의 언어로 연결하고자 했다.
또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함께 평가받았고, 야당 간사로도 활약했다. 정당 정치에 있어서는 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민생당 등을 거쳤으며, 2021년 12월 민주당에 복당해 지역 정치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도의 물결 속에 남겨진 메시지
고인의 소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반에서 깊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24일 공식 메시지를 통해 “공직자이자 행정가, 정치가로서 일생을 지역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라의 미래를 위하셨던 고인의 헌신과 열정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하며,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안식과 영면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평생 전북도를 이끌어 주신 어른이셨다”고 전하며 “이번 대선 유세 도중 쓰러지셨다는 사실이 더욱 비통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윤준병, 안호영, 이원택 의원 등도 고인을 기리는 글을 올리며 그가 남긴 유산과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윤 의원은 “지역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분”이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고, 안 의원은 “끝까지 현장을 지킨 열정적인 정치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원택 의원은 “정치의 본령을 다시 떠올리게 한 분”이라며 고인의 삶을 기렸다.
고상진 전 보좌관은 “이제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의 문이 열렸는데, 그 빛조차 보지 못하고 떠나셨다”고 회상했다. 최근까지 지근에서 보좌했던 정진숙 전 전북도의원은 “흐트러짐 없는 분이셨다. 언제나 원칙을 지키셨고, 사람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며 “회복이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던 중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울먹였다.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은 성명을 통해 “고인이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전북특별자치도 발전의 뜻을 계승해 나가겠다”며 “그 신념을 잇는 정치가 무엇인지 깊이 새기겠다”고 밝혔다.
■흔들림 없이 걸어온 길, 그 발자취를 돌아보다
유성엽 전 의원의 삶은 정파와 지역, 제도와 현장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던 시도였다.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행정가, 정당을 초월해 민심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던 정치인, 문화와 교육, 농업과 산업을 아우르며 실질을 추구했던 입법자. 그 모든 역할을 관통한 것은 ‘책임’이라는 단어였다.
지역에 뿌리를 두되, 지역에만 머물지 않았고, 정치를 하되 정파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려 했다. 유 전 의원이 남긴 기록은 수치와 성과로만 기억되기보다, 그가 쌓은 ‘신뢰의 서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소천을 애도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겸손한 실천의 사람’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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