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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이 4월25일부터 5월14일까지 운영한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 기념주간’은 131년 전 무장에서 시작된 민중의 외침을 오늘의 자리로 불러내는 실천적 기획이었다. 진격로 걷기와 청소년 문학상, 기념관 개관까지 연결된 일정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지역과 세대를 연결하고, 역사와 일상을 이어보려는 시도였다. 전봉준의 이름뿐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의 말과 발자국까지, 이번 기념주간은 고창이라는 땅 위에서 생생하게 환기됐다.
“새야 새야” 무장 읍성에 울려 퍼지다…기념제, 학생과 함께 131년 전 진군 재현
기념주간의 시작은 4월25일 공음면 무장기포지에서 열린 ‘제131주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였다. 이 행사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무장포고문을 낭독하며 항쟁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는 자리로, 매년 열려왔다. 올해 기념제는 유난히 현장감이 높았다. 아산중학교와 강호항공고등학교 학생들이 진군 행렬을 재현하고, 전북인공지능고등학교 학생들이 무장읍성 앞에서 펼친 ‘새야 새야’ 플래시몹 공연은 단순한 재현 이상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학생들의 참여는 동학을 낯선 과거가 아닌 지금 마주할 수 있는 역사로 바꾸어 놓았다. 현장을 지켜본 주민들도 “기억하는 방식이 새롭고 다채롭다”고 평가했다. 기념제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오늘의 감각으로 그날을 복원해 냈다.
걷는 몸이 기억을 만든다…디지털과 접속한 동학진격로 걷기 챌린지
기념제 다음 날부터 시작된 ‘동학진격로 걷기 챌린지’는 기념주간의 의미를 한 번 더 확장시켰다. 스마트폰 앱 ‘워크온’을 연동해 운영된 이번 프로그램은 4월26일부터 5월11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에 진행됐다. 총 600여명이 신청한 이번 걷기 행사는 고창군민뿐 아니라 인근 시·군 주민,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했다. 자녀와 함께 걷는 가족, 반 친구들과 함께 참여한 학생,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은 여고 동창 모임까지, 걷기 행렬은 세대와 일상을 자연스럽게 포괄했다. 걷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동학군이 지나간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참가자들은 무장기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걸음은 기억을 되살리는 몸의 언어가 됐다.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을 위한 무대…총체극 ‘전봉준, 무명의 녹두 전사들’ 공연
5월9일 고창문화의전당에서 공연된 총체극 ‘전봉준, 무명의 녹두 전사들’은 기념주간의 감정을 응축시킨 대표적인 문화행사였다. 극단 토박이가 창작한 이번 작품은 전봉준 장군이라는 역사적 인물 뒤에 있던 수많은 이름 없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통 연희와 현대 무대 언어가 결합된 형식은 젊은 관객들에게도 큰 몰입감을 줬다. 특히 고창 관내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대거 관람이 이뤄졌고, 6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전석이 가득 찼다. 학생 관객들은 공연 중간중간 숨을 죽이고 집중했으며, 끝난 뒤에는 극단 배우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무대는 동학을 배우는 형식이 아니라, 공감하고 감각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역사가 아닌, 오늘의 언어로 말하는 동학…황현필 소장 특강 ‘고창군에 깃든 동학농민혁명’
5월12일 고창문화의전당에서 열린 명사특강은 기록이 아닌 삶의 이야기로 동학을 풀어내려는 시도였다. 역사바로잡기연구소 황현필 소장은 ‘고창군에 깃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주제로 약 90분간 강연을 진행했다. 동학의 시작과 무장기포, 전봉준의 사상적 흐름까지 이어진 강연은 고창이라는 지역이 왜 ‘동학의 시작’이라 불리는지를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함께 설명했다. 전봉준의 활동을 “조선의 마지막 이상주의자적 시도였다”고 비유하면서, 그 이상이 오늘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제시했다. 역사교육 콘텐츠로 널리 알려진 황 소장의 강연은 학생과 일반 시민 모두의 호응을 끌어냈다.
전시를 넘어서는 공간, 기념관의 재탄생…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관 5월14일 개관
5월14일 오후, 전봉준장군 동상공원 인근에 새롭게 조성된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존 공음면의 홍보관은 접근성과 공간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이전·리모델링된 기념관은 위치뿐 아니라 기능과 구성을 모두 바꾸었다. 내부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물과 디지털 영상, 퀴즈 콘텐츠, 해설 프로그램이 갖춰졌고, 옥상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그늘막과 벤치형 화단이 설치되어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휴게공간이 마련됐다. 전시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적 체험과 연결된 문화 공간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개관식은 기념주간의 마지막 일정으로 열렸으며, 이 공간은 앞으로 지역 학생들과 방문객이 동학을 배우고 쉬어갈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 될 전망이다.
동학의 시를 쓰는 세대, 그 봄을 다시 부르다…청소년 문학상 시상식, 대상 ‘녹두의 봄은 다시 찾아온다’
기념관 개관식 당일, 같은 장소에서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고창군은 3월부터 관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詩) 작품을 공모했고, 그 결과 총 12명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대상인 무장기포상은 영선중학교 3학년 천의현 학생이 쓴 ‘녹두의 봄은 다시 찾아온다’가 수상했다. 이 작품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감정을 학생의 언어로 성실하게 다시 엮어낸 시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언어로 다시 쓰고 표현하는 이번 문학상은 기념주간 전체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었다.
고창, 시작의 땅에서 이어가는 질문
심덕섭 군수는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점이자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무장기포의 역사적 가치를 군민과 함께 되새기고, 그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이번 기념주간을 준비했다”며 “동학이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가치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관 역시 전시를 넘어 휴식과 배움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군민과 방문객 모두가 자주 찾고 머무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기념주간은 의례적 재현에서 벗어나, 기억을 몸으로 걷고 직접 써보고 감각하는 경험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하고, 고창 안팎의 사람들이 동학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환기하는 시간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점인 고창은 이를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이자 지역 정체성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자주와 평등의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되새기며, 이 기억이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출발점으로서의 고창, 한국 민주주의 시작점으로서의 고창, 그리고 그 정체성의 근거지로서의 고창이 앞으로도 그 의미를 지키고 계승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번 기념주간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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