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호우로 수해를 입은 논콩 농가들이 피해액 전부를 정부가 보상하라며 논 갈아엎기에 나섰다. 정읍시농민회(회장 황양택)는 8월16일 지역농민 등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신태인읍 육리 일대 논(8천 제곱미터)에서 △호우 피해 논콩 전액 보상 △농민생존권 쟁취 △국가책임농정 확립을 요구하며 논콩 갈아엎기를 진행했다.
논콩은 정부가 올해 처음 시행한 전략작물직불사업 대상 작물(논콩·가루쌀·조사료) 가운데 하나다. 쌀 생산량 감축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논에 벼 대신 사업대상 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지원한다. 논콩은 전라북도(지사 김관영)에서만 올해 1만1577헥타르가 신청·접수됐는데, 지난달 호우로 이 가운데 85.8퍼센트인 9935헥타르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원래라면 허리춤까지 컸을 논콩은 침수 뒤로 무릎깨도 못 미쳤다. 이날 농민들은 “논에다 밭작물을 심으라고 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쌀 공급이 과잉인 것은 국산 쌀 때문이 아니라 수입 쌀 때문인데도, 배수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논에 밭작물을 권장하는 정책은 그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에 농민들은 이번 논콩 피해는 정부가 오롯이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농민들은 갈아엎지 않고 그대로 자란다 해도 수확량은 10~15퍼센트 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장담하긴 어려우며, 다른 작물을 심기도 어렵다. 황양택 정읍시농민회 회장은 “매일 들여다보면서 자식 키우듯 농사지었는데 논을 갈아엎게 돼 마음이 정말 아프다”면서 “정부가 논에 콩을 심으라 해서 올해 15필지 심었는데 10필지가 피해를 봤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정부 권장대로 콩 심은 농가 대다수가 같은 처지”라고 전했다. 이어 황 회장은 “정부가 전국 논콩 농가 피해액 전액을 보상할 것을 요구한다”라며 “충남도의 경우 피해에 대해 100퍼센트 지원하겠다는데, 농도인 전북도 지사는 여태 입장이 없다. 정읍시는 농약대로 50퍼센트를 지원하겠다고 논의 중인데, 갈아엎을 지경의 농지에 농약비가 웬말인가. 논콩을 재난지원 대상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 회장에 따르면, 이날 갈아엎기를 진행한 논은 7월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침수됐다. 침수 높이는 약 1미터 이상으로 논콩이 3일 동안 완전히 물에 잠겼다. 황 회장은 지난 6월 중순께 이 논에 콩을 심었다. 콩은 밭작물로 논에서 키우기엔 적당하지 않지만, 올해부터 정부가 전략작물직불금을 준다며 권장했기 때문이다. 집중호우도 피해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이 일대는 펌프 같은 배수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평년에도 침수가 잦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략작물직불금 지급 기준을 낮추며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농민들은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다. 황양택 회장만 해도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다 받더라도 손해가 보전되지 않는다. 황 회장은 논 1필지당 들인 돈은 임차료(240만원)와 경작비용(인건비·농약비·비료비 등 170만원)을 합해 400만원이다. 그러나 현재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보면, 1필지당 전략직불금 100만원과 농협보험금(경작불능) 200만원으로 총 300만원이다. 단순 계산상으론 100만원 적자지만, 수확 뒤 농작물 판매까지 감안한 기대수익까지 포함한다면 피해액은 더 늘어난다.
황 회장은 “정부는 피해 농지에도 전략작물직불금을 지원하겠다면서 마치 피해 전체를 지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심각한 피해에도 직불금 정도만 지원하면서 논에 콩을 심으라고 하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인가”라고 되물었다. 아울러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않은 지역도 피해가 막심하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재난지역이 되지 않았을 뿐이며, 재난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보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이대종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작년 이맘때 논을 갈았다. 똥금(값)된 쌀값과 생산비를 보장하란 것이었다. 정부가 그 답으로 내놓은 게 전략작물이다. 논에 콩 심으면 마치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라며 “지금 이 사태는 농정 실패에 따른 것이므로 정부가 100퍼센트 책임져야 한다. 쌀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방안은 논에 콩 심는 게 아니라 쌀 수입을 멈추고 쌀값을 적극 보장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정읍시농민회는 이날 결의문을 내고 “정부는 쌀 자급률이 85퍼센트에 그치는데도 무분별한 개방농정으로 쌀 공급과잉을 초래했다. 그래 놓고 농민들이 쌀농사를 많이 지어 쌀이 남아돈다며 논에 콩을 심도록 했다”면서 “새만금 펄에서 잼버리를 하는 것이 애당초 무리였듯, 몬순기후와 평평한 전라도 논에 콩을 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배수로도 논농사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고, 기후위기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강수량을 계산해 만들어진 시설이니 결국 사달이 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농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하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전북도는 논콩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해 올해만 직불금 지급 기준을 완화해 피해 농가에도 직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현행 직불금 지급 기준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정상적인 재배 상태 유지’이나, 수해 뒤 재파종·보식 등 해당 작물을 계속 재배했다면 정상 재배 상태가 아니어도 직불금을 지급(가루쌀·논콩은 100만~250만원/헥타르, 조사료는 430만원/헥타르)한다는 것이다. 또 침수로 파종 시기를 놓쳐 재배 작목을 바꾸거나 농지 유실 등으로 재파종이나 작목 전환이 어려워도 시·군 판단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직불금은 12월쯤 지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