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약칭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독립유공자’로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법률에 따르면, ‘동학농민혁명’을 “1894년 3월에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2차 봉기의 경우 일제침략으로부터 국권수호를 위한 항일무장투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2차 봉기 참여자의 경우 독립유공자로 귀결되는 것이다.
5월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 5월29일 전북도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이 세계사적 위상을 갖게 된 만큼 국권 침탈에 맞서 싸운 농민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동학혁명기념관은 5월10일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김개남·손화중에 대해 4번째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즉 동학의병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동학농민명예회복법 제정정과 2019년 2월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완결됐다”면서 “보훈처 공적 심사 내규를 다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5월 기준으로, 동학농민혁명참여자로 공식 등록된 인원은 총 3687명이다. 이 중 1894년 3월 1차 봉기 참여자는 전체 6퍼센트인 211명, 9월 이후 2차 봉기 참여자는 85퍼센트인 3151명에 이른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수년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을미의병(1895년 10월) 서훈이 합당하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서훈해야 한다는 논리다. 학계는 1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3월20일 무장봉기)은 신분제 철폐와 같은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지만,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10일 삼례봉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내규로 독립운동의 시작을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한 ‘을미의병’(1895년 10월)으로 정해 이보다 앞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서훈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최근까지 145명을 서훈했다. 그러나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한 명도 서훈하지 않았다.
이에 정치권이 관련 법률 개정에 나섰으나 2개 법안 모두 상임위에 묶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정읍·고창) 의원은 지난 2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유공자법 개정을 포함한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법’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 이정문(충남 천안병) 의원도 독립유공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총 60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에 참여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전주병)은 5월22일 열린 박민식 국가보훈부(보훈처에서 보훈부로 승격)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가보훈처가 1905년 을사늑약 전후를 국권침탈 시기로 본다면서도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만, 1894년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민식 후보자는 “이 상태로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상당한 모순이 있다”며 김 의원의 지적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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