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균((재)김대중기념사업회 등기이사)
매년 11월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지난 2019년 4월12일, 필자의 모교 고창고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전북서부 보훈지청이 주관한 6·25 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으로 고창고 출신 참전유공자와 유족 및 동문들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식은 6·25 전쟁 때, 학업을 중단하고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한 고창고 출신 참전유공자 59인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학도의용군(학도병)은 누군가의 권유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원해서 입대한 학생 신분의 군인을 칭하는 단어다. 6·25 전쟁 당시 참전했던 학도의용군의 나이는 대략 14세~19세. 그들은 오로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연필을 잡던 손에 총을 들고 전쟁터로 뛰어든 의인들이었다.
전북지역 학도병은 북한군이 대전을 넘어설 무렵인 1950년 7월13일, 전주역에서 학생복을 입은 채 열차편으로 출정했다. 북한군의 무력남침으로 평화롭던 우리 강산이 포화와 피로 물들고, 나라의 운명이 백천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학업을 포기하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으로 달려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조국수호 과업에 일익을 담당했다.
제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 어디 있을까? 학도병들은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의 학도병들은 내 한 몸 바쳐서라도 조국과 고향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기와 충정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냈음이 자명하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 주변을 돌아보아야 마땅하다.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6·25 참전용사들과 미망인들, 국익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파월선에 올랐던 월남전 파병용사들과 유가족들. 국가는 과연 그분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고 있는가? 또 우리는 그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있는가? 미국 내 많은 주(州에)서는 참전용사의 집에 대형 성조기를 게양하고, 참전용사 명패가 부착된 집 앞을 지나는 차량은 일정속도 이하로 서행하는 법규가 있지 아니한가? 다른 것은 다 따라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아니하는가?
필자는 2012년 총선 토론회에서 6·25 참전용사들의 미망인과 보훈가족 유가족에 대한 일정 비율의 연금 승계 법제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듣기로는 최근 6·25 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 수당을 인상하고, 보훈대상자 상이등급 기준 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법안이 국방위원회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고, 필자도 거들고 싶다. 정부가 다 수용하기 버거우면 광역자치단체든, 기초자치단체든 나서야 마땅한 일 아닌가?
국가유공자는 모든 국민이 존경하고 받들어야 한다. 나라 없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순국선열과 그 유가족에게 최대한의 예우와 합당한 보상을 시행하는 나라라야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가 자문자답해 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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