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섶(문화비평가, 고창 부안면)
군수님, 1891년에 태어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도자란 모름지기 ‘지적(知的)이고 도덕적인 헤게모니를 통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라고요. ‘도덕적인’이라 함은 ‘인간적인’의 의미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정글의 세계에서 살아왔음에도 어머니는 야비하고 비열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하라는 아주 인간적인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자기 자식의 어미되기를 포기하면서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는 솔로몬의 지혜랄까요.
아,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이런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공무원이 출근 길에 집회 참가자들의 무지한 폭행으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동우팜투테이블 기업유치를 반대하는 집회가 갈수록 폭력적으로 가열되고 있어 집회로 인한 소음과 폭력으로 군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뇌피셜 가상소설입니다. ‘무지한 폭행’? ‘폭력적으로 가열’? ‘군민 불만 갈수록 고조’? 단언컨대 폭력의 ‘폭’자도 없었음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수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아, 전 군수비서실장이던 모 팀장께서 주민의 민의라 할 수 있는 ‘스티로폼 피켓’을 ‘잡아채 내던진’ ‘폭력’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군청 앞마당. 아침 출근시간 오전 8시 10분경. 닭공장 입주반대 비대위와 주민들은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군수님이 탄 차량이 군청 앞마당으로 들어옵니다. 평소에는 군수님의 출근 차량이 우회전하며 길가 쪽으로 붙여 진입했는데 그날은 길 가운데께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군수님이 차에서 내려 피켓을 든 사람들 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얼떨결의 상황에서 대책위 주민들 몇몇이 군수님 길을 막았습니다. 비대위 주민들은 뭐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군수님의 답변을 들으려고 했고, 군수님은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라며 길을 비켜 들어가려 했습니다. 군청 직원 한 명은 주민들을 몸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럴 즈음 그 모 팀장은 ‘고창 군민은 바보가 아닙니다’라고 쓰여진 스티로폼 피켓을 잡아채 길바닥에 내팽겨쳤습니다. 공무원이 ‘민의’를 내팽겨치다니요!
과도한 행위가 없었음에도 일방적으로 피켓을 빼앗겼고, 이를 본 다른 주민이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은채 내던져진 피켓을 주웠습니다. 그 시각에 군수님 비서가 청사 쪽에서 달려와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피켓을 줍던 주민이 ‘사진 찍지마’ 라며 피켓을 들어올려 사진이 찍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피켓을 치켜 든 주민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군수님 비서는 서로 앞으로 다가가면서 스티로폼에 부딪쳤고 그 순간 비서는 소리를 치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비서는 이마를 잡고 누워 있었습니다. 피켓 주민은 이때 군수님 쪽으로 다가갔다가, 계속 누워 있는 비서에게 돌아와 비서의 핸드폰을 주워 건네주며 “핸드폰도 안 깨졌어. 그만 일어나”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군수님은 군청 현관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그 순간의 사진들, 동영상 자료와 관계자 설명을 확인한 결과 상황은 이랬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계셨던 군수님, 저의 설명이 실제상황과 다른 부분이 있나요?
비대위 측은 이러한 보도를 ‘악의적인 허위보도’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사와 기자, 제보자 등을 대상으로 형사고소, 언론중재위 제소, 민사소송 등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어떻게 ‘가상소설을 쓰는 따위의 왜곡보도 행태가 나타났느냐’입니다. 그래서 궁금한 의문들이 듭니다.
불편한 징후들
왜, 그날 군수님 차량은 한가운데 쪽으로 진입했을까요. 왜, 그날 평소 때와 달리 군수님이 차량에서 내려 피켓시위를 하는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고, 비대위 사람들의 항의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군청으로 바로 들어가려 했을까요. 왜 그날따라 공무원들이 많이 몰려나왔을까요. 왜, 팀장 공무원은 비대위와 주민들 감정을 자극하려는 듯 피켓을 빼앗아 내던지는 행위를 했을까요. 왜, 그 순간 군수님의 비서는 달려와 피켓과 부딪치며 드러누웠을까요. 왜, 군수님의 비서는 두께가 5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스티로폼에 부딪쳤음에도 허망하게 쓰러졌을까요. 왜, 그 비서가 소리치며 쓰러졌는데도 그 순간 바로 옆에 있었던 군수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왜, 그 비서가, 자신의 머리가 다친 듯 머리를 만지며 드러누워 있는데도, 119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했음에도 주변에 있던 동료 공무원들은 달려들어 일으켜 세우거나 응급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고 뻔히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요. 왜, 119차량이 와서 ‘환자’를 실었음에도 바로 병원으로 출발하도록 하지 않고 경찰이 올 때까지 119차량을 붙잡아 놓았을까요.
그날 오후 또다른 인터넷신문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출근하는 공무원을 향해 둔기를 휘둘러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전북 고창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5분께 고창군청 앞에서 공무원 B씨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휘두른 피켓에 맞아 뇌진탕에 빠졌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10여 명에게 둘러싸여 누가 폭행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채증자료와 확보한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용의자를 검거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날 그 장소에는 경찰서 정보과 직원이 나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정보과 직원이 아니더라도 출동한 경찰은 ‘둔기를 휘둘러 폭행하는 사건’이었으면 현행범으로 체포했을텐데요. 왜, 신문의 보도에 따르자면, 경찰은 현행범 체포를 하지 않고, ‘채증자료’ ‘폐쇄회로 분석’하여 ‘용의자 검거’하겠다고 했을까요. 당일 112로 신고가 접수되어 다다음날 당사자인 피켓주민은 경찰조사를 받았다 합니다. 아, 누가 112로 신고했을까요. 아, 군수님의 비서는 그날 퇴원했다가 다시 또 입원했다지요.
왜, 왜, 왜... 일련의 의문스러운 행위들이 일어난 사태에 대해 군수님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군수님이 길가운데께로 진입한 것이야 우연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모 팀장이 피켓을 뺏어 내팽겨친거나, 군수님의 비서가 얇디얇은 스티로폼에 부딪쳐 쓰러져 드러누운거나, 그 장면을 불구경하듯 바라본 동료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그리고 몇몇 언론들의 요란한 소설쓰기 보도 따위들이 우연이라 하기에는 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의 예민한 오지랖인가요. 어디 그뿐입니까. 군의 홍보대사라 할만큼 자신의 유투브를 통해 농산물 홍보에도 앞장서주는, 스피커가 크신 전 국회의원의 선한 의지마저 악용하는 듯한, 그 분의 페이스북에도 누군가 그 ‘소설기사’를 올려주어 그 분으로 하여금 역정내게 했고, 완전히 왜곡된 인식의 글을 생산해 전국적으로 유통하게 한 것 또한 우연한 일로 보기에는 민망하지 않습니까.
역풍
판이 커졌습니다. 몇몇 언론보도가 사실이건 아니건, 이미 활자화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닭공장을 반대하는 비대위와 주민들을 궁지로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군수님의 얼굴이 활짝 피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혹시나 군수님 비서의 ‘드러눕기 놀이’를, 군수님은 즐기고 계신건 아닌지요. 제가 아무리 그날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일련의 의문스러운 징후들은 여론전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굳이 셜록 홈즈의 추리가 아닌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그 전 국회의원인 분은 그날 사태의 ‘소설기사’를 접한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 결론적으로 “또 선거가 가까워지는가 봅니다”로 마무리짓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분은 잘못된 정보로 완전히 오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고창군민인 비대위와 주민들에 대해 큰 실수를 하신겁니다. 군수님께 여쭙니다. 그 언론보도가 왜곡된 기사라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그날의 당사자이시기도 하고 현장에도 있었고, 현장에 있었어도 사람들에 가려 사각지대였던 부분은 보고를 통해 세세하게 전해들었을텐데 말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걸로 보아 군수님은 그 언론보도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만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군수님께서 그분의 큰 실수를 바로 잡아드려야 마땅한 일인데 말입니다. 어물쩡 넘어갈 일은 아닌듯 합니다. 그분은 군수님을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행정가’로 평가하시잖아요.
지도자는 지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은 지적인 일이요, 사실관계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는 것, 그것은 도덕적인 일이자 솔로몬의 지혜 아닐까요. 그게 곧 인간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분의 “또 선거가 가까워지는가 봅니다”는 말씀의 방향이 역풍이 되어, 언론기사 정보제공자의 자살골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떻든, 그날 사태로 말미암아 ‘지적이고 도덕적일’ 군수님이 적잖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또 여쭙습니다.
군수님, 영혼은 정녕 안녕하십니까.
※고길섶 씨는 <문화연대>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지은 책으로 <우리 시대의 언어게임> <소수문화들의 정치학> <어느 소수자의 사유> <문화비평과 미시정치> <부안 끝나지 않는 노래>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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