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학(발행인)
지방의회가 다시 제 몫을 한지 이제 30년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1952년 지방총선거가 실시되면서 민주적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당시에도 지자체장은 중앙정부가 임명했으니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의 맏형인 셈이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출범한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지방의회는 강제 해산됐고, 지방의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은 지방자치단체가 대신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그후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전국민적 열망이 지속되면서 지방자치 제도가 다시 도입됐다. 기초 의원과 광역 의원을 뽑는 선거가 1991년 3월과 6월에 각각 치러져, 같은 해 7월8일 개원하면서 지방자치 제도가 본 모습을 찾았다. 지방자치가 부활하고도 의정 쪽이 먼저 이뤄졌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함께 뽑는 지방선거가 4년 뒤(1995년)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부활 시점을 지방자치 원년으로 삼는 이유다.
민주주의 실험실이라 불리는 지방의회는 주민대표기관으로서의 지위, 의결기관으로서의 지위, 입법기관으로서의 지위, 감시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예산과 조례 등을 심의·의결한다. 2005년까지 무보수 명예직으로 활동하던 지방의회 의원들은 2006년부터 유급제로 전환되기도 했다. 30년간 운영된 지방의회는 그동안 자질과 함량 미달 의원들이 의정활동은 등한시 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한때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등 험난한 길을 걸은 것도 사실이다.
지방자치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균형 유지다. ‘강(强) 지자체장-약(弱) 지방의원’ 구도를 깨야 한다는 점이다. 견제와 균형으로 집행기관의 독주를 막는 본분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구도를 깰 생각보다는, 오히려 아부한다는 것이 실제에 부합한다. 고창의 경우만 봐도 가관이 아니다. 주민대표기관인지 군수대리기관인지 대체 구분이 안 된다. 군정에 대해 이견을 표하는가 싶다가도, 소위 어떻게 ‘쇼부’를 보았는지, 결국에는 용두사미가 되고 거수기가 된다. 그러니 주민들이 의원들을 소위 ‘박쥐’로 보아도, 군수가 의원들을 소위 ‘꼬붕’으로 본다해도 할 말이 없다.
예를 들어, 군청과 주민들이 갈등하는 사안에 대해 의회가 입장 하나 표명하지 못한다. 대체 누구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고창산단의 닭도축업체 입주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밀보장이 되는 의원들에게 입주계약서조차 보여주지 않는데도, 그냥 당하고만 있다. 누구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군청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으므로, 주민의 편에서 군청을 검증하는 것이 맞지만, 행정사무조사를 발동해서라도 군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군민의 삶의 질을 지킬 책임이 있지 않은가?
심원 염전 매입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상 처음으로 원포인트 추경이 올라와도, 7백억원이라는 막대한 고창군민의 혈세가 소수의 뱃속으로 들어가도 있는데도, 또다시 영혼 없는 거수기가 되어 만장일치가 되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한꺼번에 매입해야 한다고 거들기도 했다. 군민의 대표라고 한다면, 매입에 타당성이 있는지, 매입과정은 적절한지, 감정가는 제대로 매겨진 것인지부터 제대로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군청을 감시·견제하라고 뽑아줬더니 군청 공무원처럼 굴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싼 것이다.
“존재의 이유 상실한 지방의회”, “지방의원 범죄 심각”, “지역사회를 죽이고 있는 기형적인 지방자치”, “제왕적 단체장, 도덕적 해이 도 넘었다”, 지방자치를 고발하는 언론기사의 제목들이다. 10년 전에도 한 시민운동가는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을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각종 비리, 예산낭비, 지자체장들의 전횡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지방자치제도가 오히려 지역을 망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 결과로 생겨난 지방자치제도가 국민들을 고통 속에 빠지게 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지방자치선거가 무서워진다”고 썼다.
물론 지방의회 의원들이 현 상황에서도 주민들을 대의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우팜 사태와 관련해서도, 고수면에 지역구를 둔 임정호 의원은 주민들의 뜻을 대변하며 의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고, 비례의원인 김미란 의원은 지난 군정질문을 통해 집행부를 감시·견제하는 의원으로서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지방의회 30년, 초심으로 돌아가 남은 1년 동안, 주민대표로서 의결기관으로서 입법기관으로서 감시기관으로서 더 힘을 내,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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