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경찰이 지난 5월12일 택지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고창 백양지구 인근에 땅을 매입한 전북도청 간부 A씨의 사무실과 자택, 전북개발공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로 의심하고 수사에 나섰다. 전북도가 도청 공직자 6100여명에 대한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해 불법거래가 없었다고 발표한지 꼭 한 달 만이다. 도청 자체감사의 한계와 부실조사 가능성이 지적되어온 가운데 경찰이 직접 수사에 나섰다는 점에서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5월17일 전북도청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6일 전북도청 간부공무원 A씨는 지인 3명과 함께 고창백양지구 개발지 인근 논밭 9508제곱미터(2876평)를 1평당 14만원 정도인 4억원선에 구매했다. 총사업비 466억원이 투자되는 백양지구 사업은 고창읍 덕산리 16번지 일대 15만3천 제곱미터 규모로 아파트 1200세대와 단독주택 단지가 입지할 수 있게 택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 세부 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A씨 등이 매입한 땅은 백양지구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0∼200미터 떨어져 있다.
그러나 A씨가 고창출신으로 전북도청에서 도시계획·지역개발·산업단지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경찰은 A씨가 땅을 매입한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백양지구 택지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전북개발공사가 지난해 10월29일 고창군청에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 지정’을 요청한 뒤 한 달도 안 돼 땅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개발사업이 추진되면 주변 땅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고, A씨가 지역개발정책 관련업무를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를 의심하고 있다.
이번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전북도가 앞서 실시한 ‘공직자 부동산 투기 자체 조사’에 대한 부실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고창 백양지구는 전북도의 자체 조사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전북도는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 지정이 시·군 고유사무이므로, 고창군과 전북도가 사전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논점을 흐리는 궁색한 해명으로 보인다. 전북개발공사는 전북도 출연기관으로 A씨는 전북개발공사 운영 지도·감독 업무도 관장하고 있다. 전북개발공사가 백양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전북도와 협의없이 추진했거나, A씨가 사업추진 과정을 몰랐다면 직무를 소홀히 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북개발공사로부터 요청을 받은 고창군청은 고창군은 A씨가 땅을 사기 열흘 전쯤인 지난해 11월16일 개발지구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공고한 뒤, 같은 해 12월18일 토지 주인들의 개발행위제한을 고시했고, 12월30일 전북개발공사와 업무협약을 갖고 택지개발을 본격 추진한다고 홍보했다. A씨는 “도시개발이 공고된 뒤 부동산업자인 지인에게 매입을 권유받아 구매했다”고 전북도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도는 5월12일 압수수색이 끝난 직후 A씨를 대기발령 조치한 상태다.
마을주민과 이전 땅 주인 등 “땅 척박해, 2년간 팔리지 않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강호항공고 바로 옆 작은 ‘백양1저수지’ 뒤로 해당부지에는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 지목은 논·밭으로 되어있으며, 이전 주인이 감나무 재배를 위해 밭으로 만든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과수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땅이 매우 척박하다”면서 “물이 잘 배출되지 않아 몇 년전 함께 배수공사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전 땅 주인은 2년 전 해당 토지를 부동산에 내놨다고 한다. 척박한 땅을 팔기 위해 주위 시세보다 적은 15만원에 땅을 내논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2년 간 해당 땅은 팔리지 않았다. 2019년 겨울 한파로 인해 감나무가 얼어 죽었고, 토지가 좋지 않아 성장률도 더뎠으며, 지난해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A씨와 지인 3명은 해당 토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1평당 14만원에 매입하길 원했다. 땅 주인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고창의 부동산 중개업계는 이 땅이 현재 기준 1평당 30만원까지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근의 한 공인중계사는 “A씨가 매입 한 땅은 백양지구 개발이 진행될 경우 토지 값이 상승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면서, “개발지에 수용되는 땅보다 인근 땅이 더 큰 지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 개발지 내 땅보다 개발지 근처 땅을 더 선호하는 투자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A씨와 땅을 함께 매입한 이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파악됐다. A씨와 B씨의 아내, C씨의 자녀, D씨의 아내로, 고창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B씨는 인터넷에서 고시를 본 뒤, 해당토지를 매물로 가지고 있던 또다른 부동산 중개업자인 C씨에게 알렸다. 이후 C씨가 고등학교 동창인 A씨에게 땅 매입을 권유했고, 또 다른 지인인 D씨까지 넷이서 토지 4분의 1씩을 매입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각자 형편에 맞게 본인 명의 또는 가족의 명의로 땅 지분을 소유했다. 현재 경찰은 A씨와 A씨의 지인인 C씨·D씨를 피의자 신분, B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
전북도 간부 토지매입 시점, 업무상 기밀 해당되나?
A씨 등은 공고를 본 후 토지를 매입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구체적인 개발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시점을 업무상 기밀의 범주로 보고 있다. 땅을 매입한 시기는 지난해 11월26일로, 개발행위 제한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주민의견청취 공고 후 10일 뒤 매입했다. 경찰은 A씨가 관련업무를 총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런 개발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투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법조계는 2006년 11월 대법원의 ‘도로개설계획 및 구체적 노선계획안’의 사전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투기 혐의에 대한 판례에 주목한다. 대법원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이란, 국민이 객관적·일반적 입장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설령 도로개설계획이 외부에 공개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구체적 노선계획안이 외부에 알려지지 아닌 상태라면 보상 및 시공업무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돼,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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