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섶(문화비평가, 고창 부안면)
군수님, 고창문화관광재단 설립,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설립 이후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문화활동가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지경이고, 주민과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조차 합니다.
고창문화관광재단, 군수님의 공약으로 설립된지 햇수로 3년차입니다. 재단이 고창 지역사회의 낡은 문화예술적 관행과 기득권적 적폐를 약화시키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문화예술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길 기대했습니다. 고창 지역사회의 문화적 공공성을 창출하는 문화예술활동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희망으로 설립 초기에 임기 2년의 이사 공모에 저도 응모했지만 역량이 부족했던 탓인지, 2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생각해보니 결과적으로는 기쁘게도, 떨어졌습니다. 좋은 말로 ‘정무적 판단’, 나쁜 말로 ‘정치적 잣대’로 뽑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실적 제일주의?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설립 3년차의 고창문화관광재단은 또다른 적폐의 덩어리로 비만해져 온 것 같습니다. 재단을 왜 설립하려고 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재단이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재단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잡아나가고, 거기에 걸맞는 인적 역량 구축, 문화예술인 교육 및 네트워크, 주민 문화감수성 환경구축 아닙니까. 초기화조건으로서 역량강화의 준비과정이 일정기간 필요하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듣자 하니 역량구축을 중시하기는 커녕 오로지 ‘실적, 실적, 실적!’을 군에서 요구하더라 이겁니다. 이를테면 문화도시 따위들의 공모사업에 올인하여 뭔가 실적을 만들어내라는 것이죠. 직원들에 대한 인권 감수성은 둘째치더라도, 직원들을 공모사업 실적기계로 취급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군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 물론 실적도 중요하고 문화도시류의 사업도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지라, 예로부터 사람들은 ‘일머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 까닭이지요. 사상누각을 만드는 오류를 저지르지 말자는 뜻입니다. 사상누각으로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잖습니까? ‘실적, 실적, 실적!’ 하는 게 이미지정치에 능해보이시는 군수님의 바램과 상통하는 건가요? 아니면 군수님이 그렇게 요구하시는 건가요?
공적영역이 사적 욕망으로 휘둘려?
관련 조례에 따르면 고창문화관광재단의 이사장은 군수가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이사장의 직무를 대행해온 것으로 보이는, 군수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수석이사’라는 분이 다행하게도 얼마전에 사의를 했다고 합니다만, 그분의 행태가 적폐의 주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적폐스러운 여러 사례들이 있더군요. 그 사례들은 그분이 그만뒀다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군수님, 이런 사례들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이런 일들이 사실 맞나요? 사실이 맞다면, 이사장인 군수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수석이사라는 분의 일련의 행태는, 제가 볼 때는 어떤 사적 욕망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군수님은 이런 부분을 눈치채지 못했나요? 아니면 눈치채고도 어찌 하질 못하셨나요? 공적영역이 사적 욕망으로 휘둘릴 때 적폐가 스며들고 악마의 기운이 뻗칩니다. 적폐라는 악마, 디테일에 있습니다.
문화관광재단이라는 공적영역이 특정 지위자에 의해 사적 욕망으로 주도당하고 권력질 당할 때, 그리고 이사장인 군수님과의 사적관계에 의해 냉철함이 망설여질 때 재단은 참혹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단 이사회는 거수기?
수석이사와 사무국장이 갈등관계로 치닫다 결국 사무국장이 그만두게 되고, 직원들도 벌써 여러 명이 그만두게 되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직원들마저 그만두게 하려고 했던 모습이 참혹하다는 것입니다. 직원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갑질로 훼손당하는 인권의 문제까지 거론하기에는 ‘고창식’으로는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일까요?
오늘의 고창문화관광재단 사태, 심각합니다. 이런 꼬라지에 이른 것은 단지 수석이사의 행태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이사회를 열게 되면 딱 한 분 빼고 쓴소리를 하는 분들이 없었다죠? 그나마 쓴소리를 해봤자 먹혀들지도 않고요. 모두들 묵비권 행사를 한다죠? 논의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결정된 것에 거수기노릇이나 한다죠. 행여나 군청 사업을 받아먹어야 할 처지인지라 딴소리를 할 수 없는 건 아니겠지요? 사실상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결정과정이 없는 재단 이사회는 왜 존재할까요?
그만둔 직원들 숫자 채워 놓으면 뭐하나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수석이사 한 사람이 그만 뒀다고 해서 재단이 정상화되리란 보장이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군수님이건 군 행정이건, 여전히 공모사업, 공모사업, 공모사업! 그리고 ‘실적, 실적, 실적!’으로 내모는 한 말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공모사업 추진, 선정을 위해서라면 무에서 유라도 창조해내는 무리한 사업계획서! 이 공모사업 계획서들이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아십니까?
직원들이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그만둔 이유를 잘 살펴봐야겠지요. 요새 사무국장, 팀장, 대리들을 싸그리 채용하고 있더군요. 직원들 새로 뽑아 숫자만 채워놓으면 뭐 합니까? 새로 뽑아야 할 것은 직원들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고 올바른 마인드여야 합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조성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해득실 따져, 혹은 용기가 없어, 혹은 뭐가 뭔지 몰라, 혹은 재단사태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어, 혹은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강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인양 관망하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태도 또한 재단사태에 공모해온 셈이지요. 자신들의 권리이자 의무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말도 안하는 것, 아무말도 못하는 것, 어쩌면 오랜 세월 길들여온 결과겠지요.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지원금 몇 푼으로 이런 정서를 악용하는 공무원 갑질의 행태입니다. 닭공장 반대 일인시위하는 현장에 나타난 공무원이 공모사업 안 할거냐고 물었다는 행태에 대해 군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했다고 승진이라도 시키실 겁니까, 아니면 공무원들의 갑질로 판단해 질책을 하실 겁니까? 군수님께서 선택해야 할 도(道)의 갈림길입니다.
문화영혼은 안녕하십니까?
고창문화관광재단, 단추를 잘못 꿰어왔습니다. 시행착오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성찰을 한다면 말입니다. 앞으로는 대안적 발상이 요구됩니다. 군수님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겠지요. 갈 길을 제대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고창문화관광재단은 고창군민들의 것입니다. 조례상 이사장으로 자리잡고 계신 군수님의 실적쌓기용 공장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군수님께 다시 여쭙니다.
군수님! 문화영혼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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