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기 정읍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시장직을 잃었다. 이미 고희(70세)에 들어선 그는 정권교체 이후 두터운 민주당 인맥을 활용해 막판 투혼을 불태울 호기를 맞은 것이 확실했지만, 결국 선거법에 발목이 잡히면서 평생 몸담았던 정치권을 떠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오랫동안 정읍에서는 “생기가 없으면 원기도 없다”는 말이 회자됐다. 민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을 거쳐 국회의장까지 지낸 김원기를 만들어낸 이가 곧 사촌동생이자 보좌관인 김생기였다는 얘기다. 이처럼 김생기 시장은 막강한 실세였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3선 당선이 확실시됐지만, 이날 대법원 확정으로 5년 동안 피선거권을 제한받아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지난 12월22일(금)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김 시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2백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에 의해 취임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지방공무원법상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직위를 상실하게 된다.
김 시장은 지난 총선 당시 산악회 버스와 친목모임 식당에서 유권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과 같은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선 1심과 2심은 “유권자 다수가 있는 모임에서 특정당과 특정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통해 단체장으로서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으며, 따라서 선거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벌금 2백만만을 선고한 바 있다.
김생기 시장은 “부덕의 소치다. 시민들께 송구할 따름이다”면서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정당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비록 현직 단체장이긴 하나, 업무시간 외 정당인의 소신발언을 두고, 법의 잣대로 재단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김 시장 낙마로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구도 변화와 함께 현안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선인 김 시장은 그동안 농축산업 경쟁력 강화와 토탈관광 실현 등 시민 삶의 질 향상에 주력해왔다. 정읍시청 공무원들은 김 시장의 직위상실형 확정이 전해지자 침통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 공무원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사업만이라도 지방선거 전까지 잘 끌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법원 선고 뒤 김 시장은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시청 각 부서를 돌며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정읍시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 달라”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직원들도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으며, 일부 직원들은 김 시장과 악수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보였다. 지자체장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면 재보궐선거를 생략할 수 있는 선거법 규정에 따라, 정읍시는 내년 지방선거 당선자 취임 전까지 김용만 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는다.
김용만 정읍시장 권한대행…“시정(市政) 공백 없도록 만전”
정읍시청은 “지난 22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정읍시장이 궐위됨에 따라, 대법원 선고시점부터 내년 6·13 지방선거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까지, 김용만 시장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김 권한대행은 대법원 선고 후 정읍시의회를 방문해,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와 권한대행체제 운영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권한대행체제의 시정운영방향과 중점추진사항을 지시했다. 김 대행은 “정읍시 산하 모든 공직자들은 시장 궐위에 따른 엄중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책임감을 갖고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시정 운영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또 “현안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민선6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민선 7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해 정읍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청 출입기자실을 방문한 김 대행은 “김생기 시장은 민선 5·6기 시정을 운영하면서 공직사회 안정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며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 1400여 공직자들과 힘을 합쳐 안정적으로 시정을 운영해, 행정 공백이 없도록 하고 지역발전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김 권한대행은 “시민들께서도 변함없이 시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협조해주시고 성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의당 전북도당 논평…“중도하차 피해자는 주민”
국민의당 전북도당은 12월22일(금) 김생기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시장직을 상실한 데 대한 논평을 내고 “단체장 중도하차 피해자는 주민”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김 시장에 대한 직위상실형을 확정한 것은) 단체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선거법을 어기면서까지 특정 후보를 지지하다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국민의당 전북도당은 이건식 전 김제시장과과 박경철 전 익산시장의 낙마도 언급하면서, “이같은 단체장의 위법행위는 유권자들에 대한 심각한 배반행위로써, 행정공백에 따른 지역발전 저하 등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해당지역 시민 모두에게 돌아간다”며 “단체장은 그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매우 심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가 높은 도덕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국민의당은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보다 엄정하고 까다로운 기준으로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철저히 검증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공천…‘김심’과 ‘이수혁’의 역할
김생기 시장이 낙마함에 따라, 오는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는 자천타천 우천규 시의원(전 시의장), 유진섭 시의원(현 시의장), 이학수 도의원, 이상옥 전북도당 국제교류협력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정읍시장 민주당 공천은 김생기 전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판도가 좌우될 여지가 충분하다. 정읍에서 강력한 조직도 확보하고 있지만, 김 전 시장은 정읍지역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전폭적이라고 할만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정읍·고창지역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수혁 국회의원(비례대표)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김 전 시장과 같은 방향키를 잡고 함께 움직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강력한 정치적 자장 안에서, 누가 김 시장의 신임을 받는지가 기정사실화되고, (6개월 남은 기간동안) 과연 이 자장을 뚫어내고 차이를 확보하는 후보는 있을지, 이제 정읍의 지방선거는 급물살을 타고 일정한 흐름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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