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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협동조합의 기틀을 다진 이면우 고창신협 전 이사장
김동훈 기자 / 입력 : 2017년 12월 30일(토)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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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해피데이
지역과 수도권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2017년은 특히나 <지방의 소멸>이 이슈가 되어, 이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의미심장하게 논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과 물류를 빨아들이는 수도권의 무소불위 힘에 맞서, 지역이 독특한 힘과 메시지를 가지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힘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 우리가 우리이웃을 아끼고 ‘사람인프라’를 공고히 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누구나 고향 고창을 떠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된 지금, 우리 고창이 고창답게 색깔을 유지하며 버티는 유일한 힘,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12월9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이면우 전 고창신협 이사장 이야기다. 협동조합의 바탕이 아직 우리 지역에 자리잡기 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신협운동’의 길에 나섰던 한 ‘협동조합인(人)’의 삶을 되짚어, 지역에서 사람의 성장과 역할이 어떻게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지 살피려 한다.

농도, 고향을 위해 헌신한 지역협동조합인

이면우 전 이사장은 1942년 해리면 나성리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천석거리 중부자였고, 지역사회를 위해 학교(나성초등학교)와 도로(나성-지로 도로), 저수지(나성저수지)를 건립하는 데 재산을 기부하는 일을, 자라면서 눈여겨 보아왔다. 천석 가세가 기울면서 해리중학교를 마친 이 전 이사장은 서울 덕수상고 진학에 실패하고,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내며 생활전선의 사투가 시작된다.

1962년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길을 모색하는 ‘청년농업인’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촌교육, 지도자교육, 새로운 농사기술, 축산기술을 배우며 농촌부흥의 기대를 온몸으로 실천해보던 시기였다. 그사이 그는 농촌의 어려움이 기술의 문제만도, 교육의 부재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시작한 천주교와의 인연이 고창천주교회로 이어지고, 교회보를 통해 ‘신협정신’의 전말을 엿보게 된다. 청년 이면우를 매료시킨 하나의 문장,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상호부조(相互扶助), 신협의 근본정신이었다. 당시 농촌을 피폐하게 하던 ‘고리채’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지역금융조직의 힘을 배운다. 그리고 1966년 신용조합 협동교육원 11차 교육을 마치고, 교향인 해리면 나성리에 나성신협을 창립한다.

나성신협이 순항하면서 1970~72년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고창읍에 신협을 설립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1년여 준비 끝에 1974년 11월24일 이풍재 이사장을 모시고 고창신협을 창립한다. 서른세 살 때의 일이다. 무보수 회계이사로 시작해 2005년 고창신협 30주년과 함께 실무책임자(전무)로 퇴직할 때까지, 고창신협은 크고작은 위기를 무사히 넘기며 지역의 든든한 금융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창신협의 40년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으로서 삶

고창신협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 생전 이면우 전 이사장이 손꼽은 고창신협의 역사 몇 가지를 살핀다. 1978년 국가의료보험체계 확립 이전, 전북가톨릭 의료협동조합에 고창신협이 가입해 어려운 조합원들이 의료협동조합 혜택을 보기 시작한 일, 1980년대 중반 전북의 신협 가운데 앞장서 신협업무 전산화를 시작한 일, 1992년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1500평 고창신협회관의 신축, 1997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를 한수원 보상자금 유치와 임직원의 자기희생으로 극복한 일 등이다.

전무이사로 고창신협 실무책임자로 퇴직한 이 전 이사장은 2006년부터 제13대 고창신협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 제16대 고창신협 이사장 자리를 놓고 고석원 전 전북도의회 의장, 당시 무송학원(무장면 영선중·고교 재단) 이사장과 선거를 치러 고배를 마시게 된다.

영원한 학생, 지역봉사자, 조정위원의 삶, 그리고 ‘신협맨’

이 전 이사장은 언제나 학생이었다. 해리중학교를 마치고 덕수상고 입시에 낙방한 뒤 학업의 길이 끊겼는데, 고창신협 실무책임자로, 금융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방통고교부터 학업을 다시 시작한다. 학업은 대학으로 이어져, 1991년에는 방송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에는 같은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면서 우리 문학의 향기를 엿보기도 했다.

이 전 이사장은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의 초석을 다진 이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고창고인돌마라톤동호회를 결성해 초대회장을 지냈고, 첫 고창고인돌마라톤대회를 회원들과 함께 성사시키기도 했다. 올 11월에도 제15회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 전 이사장은 고창라이온스클럽, 밀알회 활동도 왕성히 하며 지역사회 봉사일꾼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고향 해리중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아 해리중학교 총동문회 부흥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고창군법원의 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크고작은 주민간의 다툼이 법정싸움으로 가지 않고 서로 잘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청소년기 서울생활에서 만난 신앙, 천주교회 활동도 도드라졌다. 고창천주교회 사목회장(현 총회장)을 몇 차례 역임하면서 지역 종교공동체가 굳게 자리매김하는데 헌신했다. 2012~13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고창군협의회 15기 회장을 역임하며 대통령 직속기구의 지역협의회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 전 이사장에게는 고창신협이 우선이었다. 스스로를 영원한 ‘신협맨’이라고 부르곤 했으니 말이다.

지역을 살리는 혹은 버티게 하는 협동조합의 시대, 협동조합 선각자

1974년 조합원 20여명, 출자금 3만3866원으로 시작한 고창신협은 2016년 12월 현재 1천억 자산에 7700여명 조합원을 가진 중견 금융조직으로 성장했다.

다시 협동조합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 지역을 살리는 하나의 화두로 작동하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학교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업 혹은 사회적기업 등의 옷을 입고 지역의 위기를 지역사람들끼리, 동종의 업계사람들끼리 뜻과 마음, 자금을 모아 헤쳐나가려는 시도가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지역의 금융조직으로 손색이 없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 삶의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풍요와 만나기를 바랐던 이 전 이사장. 지역 협동조합의 한 맥락을 잡아놓은 이 전 이사장의 삶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일어서곤 했던 우리 고유의 두레, 품앗이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이제 수도권과 경쟁은 꿈도 못 꾸는 시절이다. 이 어려운 지역빈곤의 시대에 이 전 이사장은 지역 자립의 길에 실오라기 같은 화두를 던져준 선각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그의 고향 해리, 그의 선친이 희사해 만들어졌다 폐교된 나성초등학교 자리에서, 그의 아들 이대건 촌장의 우리나라 최초 농촌마을에 뿌리박은 책과 인문공간, 책마을(책마을해리)의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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