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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본예산안 부결…주민들 본회의장 점거
삭감찬성 의원들 “삭감된 예산은 농민과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하라”<br>삭감반대 의원들 “예결위 심사에서 사안별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동훈 기자 / 입력 : 2013년 01월 02일(수) 11:58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 지난 12월 20일 본회의장에서, 한 주민이 의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났다. 4천여억원을 사이에 두고 선의와 악의가 부딪혔다. 대부분이 그렇듯, 선의는 서툴렀고 악의는 노회했다. 야단법석 속에 진짜 악의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세상에 치여 유령처럼 살다가도 진짜 인간이 되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다.

고창군의회 예산결산위원회(이하 예결위, 위원장 오덕상 의원)는, 첫째 공유재산 관리계획 미승인, 둘째 구체적 계획 없는 선심성 예산, 셋째 실효성이 없는 예산 등을 이유로 98개 사업, 143억여원을 삭감했다. 그리고 이 삭감된 예산이 농림축산업과 취약계층에 지원되도록 집행부에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 복지관 건립 ▲소형저온저장고 설치 ▲하우스 설치 ▲밭직불제 증액 ▲농업인회관 건립 ▲한우명품관 건립 등을 제안했다.

이 삭감된 예산안이 20일 본회의에 심의되자, 100여명의 주민들이 ‘농민실정 외면하는 군의회는 해산하라’ ‘자격상실 군의회는 자폭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삭감예산안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삭감된 예산액 중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농민에게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삭감찬성’ 의원들(박래환·조병익·조금자·이만우·오덕상·이상호)에게, 일부 주민들은 욕설을 하고 물병을 투척하며, ‘삭감반대’ 의원들(박현규·조규철·임정호·윤영식)과 ‘집행부’를 응원했다. ‘삭감반대’ 의원들은 “삭감과정에서 사안별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의회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했다. 결국 저녁 5시경 삭감예산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저녁 7시 30분경 찬성 5표(박래환·조병익·이만우·오덕상·이상호)·반대 4표(박현규·조규철·임정호·윤영식)·기권 1표(조금자)로 (과반수를 넘지 못해) 내년 예산안이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의회 관계자는 내년 1월 초에 ‘본예산’이 다시 부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현규·조규철·임정호·윤영식 의원과 집행부는 삭감예산안을 반대하고 있고, 나머지 의원들(조금자 의원은 예결위에서는 찬성, 본회의에서는 기권) 삭감예산안을 찬성하고 있다. 누가 농민과 소외계층을 위해 예산안 심의를 했는지, 독자와 군민 여러분은 두 눈을 부릅뜨고 따져볼 일이다.

예산결산위원회

지난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예결위가 열렸다. 이번 예결위에서는 내년 본예산안, 올해 3차 추경예산안, 내년 관리기금 운용계획안이 심사됐다.

이강수 군수는 “올해 3차 추경예산안은 태풍 ‘볼라벤’ 및 ‘덴빈’으로 인한 재해복구비 등 252억원이 추가 편성됐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관리기금의 총규모는 119억원으로, 13억원은 기금의 고유목적에 사용할 계획이며, 나머지 106억원은 기금의 효율성·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행정에서 4024억원을 올린 내년 본예산안이다. 예결위는 12월 7일, 10일~13일 5일동안 (행정이 예산을 편성한 사유를 청취하며) 예산안들을 심사했다. 하지만 예결위가 시작된 12월 7일 오전, 오덕상·조금자·이상호 의원만이 내년 본예산안을 심사하고 있었다(조병익 의원은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참석하지 못했다, 예결위는 의장을 제외한 의원 9명으로 구성된다). 예산안을 조목조목 따져야할 의원들이, 예결위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12월 17일~18일 계수조정 및 삭감조서 작성을 위한 예결위가 열렸다. 오덕상 위원장은 고창군의회 사상 최초로 ‘계수조정위원회’를 일반인과 언론에 공개했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그동안 계수조정위원회는 행정과 의회가 담합하는 밀실협상의 온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오덕상 위원장은 13일 의원들에게 삭감조서를 내라고 주문했다. 전문위원들이 행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삭감내용에 대해서는, (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예결위에 삭감내용을 그대로 상정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현규·조규철·임정호·윤영식 의원은 삭감내용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계수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혀왔다.

17일 오전 계수조정위원회가 열렸고, 박현규·조규철·임정호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98개 사업, 143억여원을 삭감한다는 내용이 승인됐다. 윤영식 의원은 회의 진행 중에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나, 회의가 끝난 뒤 “삭감내용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늦게 온 박현규·조규철·임정호 의원이 윤영식 의원의 의견에 동조했으며, 오덕상·이만우·조병익·조금자·이상호 의원과 서로 고성이 오가며 대립했다.

삭감한 내용은 무엇인가

   
삭감한 내용은 첫째, 석정문예회관 건립사업·천금정 보존사업과 같이 공유재산관리계획이 미승인된 경우이다. 행정적 절차를 이행하면, 추경에라도 심사한다는 계획이다. 둘째, 경로당 기구보급·농로 자갈포장 등 민원성 사업의 경우, 선심성이 아닌 계획적 집행을 주문하고 있다. “준데 또 준다”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삭감사유’에는 ‘예산과다’ 등으로 표기돼 있지만, 필요성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이 올라오면 추경에 의결하겠다고 한다. 셋째, 산악자전거 관련사업 등 실효성이 없는 예산을 삭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산들은 불요불급하기 때문에, 농림축산업과 소외계층을 위해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집행부에 건의했다.

수정예산안 상정

다음날 예결위에는 집행부에서 제출한 수정예산안이 상정됐다. 집행부는 11건의 삭감내용은 수용한다고 밝혔다. “의회에서 삭감한 내용을 수정예산안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단한 오덕상 예결위원장은, 집행부가 의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며 수정예산안에 대한 심사 자체를 거부했다. 그러자 또다시 의원들간에 고성이 오가며 대립했다.

하지만 수정예산안 심사 거부를 하면서, 본회의에서 심의할 예산액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19일 다시 예결위를 열었고, (결과적으로) 당초 98개 사업·143여억원 삭감된 내년 본예산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본회의장 항의방문

아침 10시. 의회를 항의방문한 100여명의 주민들은 ‘농민실정 외면하는 군의회는 해산하라’ ‘자격상실 군의회는 자폭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삭감예산안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스스로 참석했든, 누군가에 동원됐든, 일부 농민단체들과 어르신들, 공무원들, 삭감 당자자들이 본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본회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판단한 박래환 의장은 일단 정회를 선포했다.

일부 농민단체 회원들은 “삭감된 예산 속에는 농어업인 지원사업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어떤 농어업인 지원사업이 포함돼 있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삭감찬성 의원들은 “농어업인을 위한 민원성 예산이 포함돼 있지만, 계획없이 선심성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예산을 의결하겠다”고 밝혔다. 어르신들은 “경로당 기구 보급을 위한 예산이 8500만원이나 깍였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서도 삭감찬성 의원들은 “준데 또 준다는 민원이 올라왔기 때문에, 공평하게 계획을 세워 예산을 편성하면, 언제든지 예산을 의결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의회가 속개돼 조례안과 공유재산 관리계획안들이 의결됐다. 석정문예회관 토지매입안은 상임위에서 부결됐지만, 임정호·박현규·윤영식·조규철 의원이 다시 본회의에 상정했다. 상호 토론을 거쳐 표결에 부쳐졌지만, 석정문예회관 토지매입안은 결국 부결됐다. 올해 추경예산안과 내년 관리기금 운용계획안은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내년 본예산안 심의

내년 본예산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조규철 의원이 본예산안에 대한 발언을 요구했다.

조규철 : “심의내용과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다. 먼저 예결위에서 일부 의원들에게 삭감조서를 작성·취합한 후에, 의원들간의 상호토론과 의견교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삭감조서를 승인한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연차사업의 경우, 내년에도 예산을 편성해야 사업의 효과가 있는데, 예결위에서 10개 사업에 대해 심의도 안 하고 삭감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예결위에서 어떤 의원에게는 의사발언의 기회를 주고, 박현규 의원에게는 의사발언의 기회조차 원천봉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 결과 18일 예결위원장이 수정예산안에 대한 심의를 거부해 놓고서는, 19일 또다시 예결위를 개최해 수정예산안을 심의한 것은 문제가 없는지 묻고 싶다. 사업의 시급성·타당성·경제성을 군민 입장에서 바라보고, 지역의 현안과 예산의 효율성을 고려해 예산을 심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장 직권으로 상정해 재심의를 할 것을 요구한다.”

오후 4시 30분. 의회는 다시 속개됐고, 의장은 본예산안 심의를 표결에 부쳤다. 그러자 조규철 의원은 “예산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사안별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만우 의원은 “상정된 안건은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며 표결을 주장했다. 결국 다수의 의원이 표결처리에 찬성하자, 방청석에서는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겠다”는 등 욕설이 쏟아졌으며, 물병이 투척되는 등 의회는 난장판으로 치달았다.

이 와중에 내년 본 예산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방청석의 고성으로 의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 삭감예산안 찬성에 오덕상·이만우 의원 두명이 손을 들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의장이 다시 찬성표를 들라고 하자, 오덕상·이만우·조병익·이상호 의원이 손을 들었다. 반대표에는 박현규·조규철·임정호·윤영식 의원이 손을 들었다.

내년 본예산안 부결

저녁 7시에 속개된 본회의에서는 이전 표결에 대한 결과가 발표됐다. 찬성 5표(박래환 포함), 반대 4표, 기권 1표로 (찬성표가 과반수를 넘지 못해) 내년 본예산안이 부결되는 고창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행정사무감사 결과보고서가 채택됐고, 조병익 의원의 5분 발언이 이어졌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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