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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돈 오푼 이야기를 아시나요?
- 구한말 일본의 천인공노할 경제 침략의 간계사건
이기화 기자 / 입력 : 2012년 10월 24일(수) 16:49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던 두돈 오푼 악화(惡貨)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5개월 전 1905년 6월 24일 가진 것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을 빈정대는 말투로「두돈 오푼도 없는 놈」이라고 하였다.

일본의 금본위 화폐제도를 모방하여 은(銀)본위의 구한말 화폐제도를 갑자기 개혁 공포하여, 구 화폐 두돈 오푼을 신 화폐로 교환해준다는 일본의 마수에 구(舊)한국의 경제가 놀아나면서,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고문정치가 현실화되어 한국경제를 지배하기 시작한 엄청난 역사적 실책이요, 이벤트였다.

이와 같은 상황을 전제로 의식하면서 그 핵심적인 일본의 농간에 대한 속셈을 들여다보면, 한국인을 깡그리 무시해버린 일본의 독단적이고 악랄한 한국인 기만사건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발행부수가 30부밖에 안 되는 구한국의 관보(官報)를 통해서만 화폐개혁 공시를 하고 일반 백성들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기(旣)통용되었던 백동화(白銅貨) 두돈 오푼의 유통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이틀 후인 7월 1일부터 두돈 5푼 백동화폐를 신 화폐와 교환시킨 것이다. 더욱이 기절초풍할 일은 신 화폐와의 교환선상에서 관주전(官主錢)은 갑종(甲種), 좀 불량한 주화(鑄貨)는 을종(乙種), 형질이 나쁘고 조악한 것은 병종(丙種)으로 분류하여, 병종은 아무런 대가없이 그냥 회수해버렸고, 을종은 1전 가치로 반타작 교환형식을 취했으며, 갑종만 2전 5푼어치 새 화폐로 교환해주었다. 이 때문에 불량주화를 갖고 있던 대부분의 백성들은, 1905년 7월 12일자 황성신문을 보면 「…통용된 것이 모두 무가치한 악화(惡貨)였으니 사, 농, 공, 상 모두가 도산할 것이 명백하다. 갑, 을, 병의 차별된 규정을 두어 일방적으로 교환되는 것이니 그로인해 손해 본 사람은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보도하였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던 두돈 오푼 악화(惡貨)

당시 경성상업회의소에서 일본총리대신에게 보낸 청원서에는 「화폐교환의 기밀은 그 제정 이전에 재빨리 어느 일부에 누설되어, 양화(良貨)는 점차로 일부의 손에 들어갔고 한국인은 악화만을 움켜쥐고 있어 부지부식간에 단두대에 올려진 꼴이 되고 말았으니, 이는 실로 악덕을 돕고 무고를 죽이려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된 그 「기밀」은 경제정보와의 이속에 밝은 일본 상인들과 일본 관리들이 화폐교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을 말하는데, 일본인들은 그 기밀을 사전에 알아차리고 불량 백동화로 양화를 매점매석해 둠으로써, 화폐교환 때 겉으로는 누가 보드라도 합리성이 있는 그들만의 이익보장을 두고 나무랄 사람이 없도록 위장책을 강구하여, 벼락부자식의 자본형성을 통한 경제침략의 마수를 뻗쳐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두돈 오푼 위조주화의 제작주범인 일본인들이, 위조주화로써 한국시장 상품의 독점 및 교란책을 이미 각본대로 저질러놓고, 다시 화폐교환 때 치고 빠지면서 양화를 구해놓지 못한 한국백성들을 허탈상태에 빠지게 하는, 이른바 일제강점기의 문턱에서 화폐로 인한 경제적 수탈은 천인공노하게 너무 야비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는 치욕을 우리 조상들에게 안겨준 것이다.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당시 한국백성들은 약 천만원(당시 쌀값으로 2백만석 상당액)의 불량주화를 움켜진 채 하루아침에 파산을 당한 셈이다. 이와 같이 백동화 인플레이션인 두돈 오푼 교환의 부작용으로 인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개항장에 이르기까지 불 꺼진 항구가 되어, 물건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게 되어 아예 점방 문을 닫아 버렸다.

1905년 한국인 총수는 약 970만 명, 한국거주 일본인 총수는 4만2460명이었는데, 화폐교환에 응한 3178명 중 일본인은 51%인 1623명, 중국인을 포함한 한국인 총수는 48.6%인 1548명에 불과했다.
당시 한국인이 갖고 있던 두돈 오푼 백동주화는 병종에 해당되는 거의 불량품이어서 교환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정보력이 빨라 화폐교환이 이루어지기전에 재빨리 갑, 을, 종으로 바꿔치기 해 두었기 때문에, 총 교환액수 852만원 중에서 한국인은 45.57%인데 비해 일본인들은 53%가 되어, 위조주화 발행처분고를 고려해보면 거의 100%에 해당되는 무자본 상태에서 얻어진 일확천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더욱 기절초풍한 일은, 일본상인들이 못쓰게 된 불량 백동화인 두돈 5푼짜리를 긁어모아, 화폐개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순진한 벽지 농민들을 재빨리 찾아가, 그 돈으로 한국인들의 토지를 무작위로 사들였던 것이다. 그때 농민들은 백동주화일 망정 아주 비싸게 팔 수 있었기 때문에 다투어 팔 땅을 내놓았는데 결국은 무용지물의 쇳조각 뭉치만을 움켜쥔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시대 한국 사람들은 당백전(當百錢) 당오전(當五錢) 두돈 5푼 등 새로운 주화가 나올 때마다 앉아서 손해를 보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기 때문에 지금(地金)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상평통보(常平通寶) 당2전(當二錢)등 옛 엽전만을 신뢰했고, 지폐나 동전 따위는 믿으려하지 않았던 한국인의 민족심리를 일본인들이 최대한 악용한 실례가 되고 말았다.

1883년(고종 20년)에 당오전이 발행되자마자 일본인과 한국인관리들은 사재기에 나서서 백성들로부터 구엽전(舊葉錢)으로 공납금을 징수하면 국고에는 신주(新鑄) 당5전으로 대납하고, 구엽전은 구리값이 오르면서 이를 빼다가 일본으로 수출하면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기에, 친일관리들과 일본인들이 야합하여 기를 쓰고 혈안이 된데서, 돈맛에 미쳐 돌아난 약삭빠른 이들의 수법이 몰고 온 망국의 원인제공의 연유가 되었음을 부기해 두면서, 이 엄청난 비극의 씨앗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성인들은 만주의 간도(間島)땅으로 이민을 통해 부득이하게 민족의 대이동을 단행한 눈물겨운 비극이 되고 말았다.
이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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