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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썩음병은 잎과 줄기가 썩어 들어가며, 생육상태가 불량한 과실이 열리며, 그 과실도 점점 썩어 들어간다. |
지난 6월초, 고창의 일부 수박농가 모종에서 과일썩음병(세균성)이 발생했다. 씨드레스(씨없는 수박) 품종에서였다. 농업기술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59농가 46헥타르 중에서 17농가 10헥타르가 피해를 입었다.
결국 8월 중순경 17농가 중에서 3농가가 종자회사·육묘업체(이하 종묘업체)를 상대로 “과일썩음병에 걸린 모종을 공급했다”는 혐의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계속 수박을 키운 농가들은 적게는 10% 정도 피해를 보았으며, 많게는 10%~30% 정도만 수확한 농가도 있었다.
대산면의 한 농가에 따르면 “3분의 1가량 수확했다. 육묘업체에서 권한 아그리마이신과 영일바이오란 농약을 사용했지만, 과일썩음병이 계속 발생했다. 농약을 뿌리면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이다가 좀 있으면 다시 빠르게 퍼졌다. 그러다 농약을 많이 사용해 약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착과 시에 다시 발생해 그나마 30% 수확한 것도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행정은 제대로 대처했는가 처음으로 돌아가서, (육묘업체가 인정했듯) 육묘업체가 병든 모종을 공급해 놓고는, 왜 그 책임을 개별 농가들이 지게 된 것일까?
농가들은 “행정에서 처음에는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는 빠르게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종묘업체를 불러 대책을 협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전북농업기술원에 의뢰해 과일썩음병이란 결과를 받아냈다.
하지만 종묘업체와의 협의가 결렬되는 와중에서, 행정의 대처는 급작스레 이완돼 버렸다. 일부농가들은 “이후로 행정에서 관리하는 농가와 관리하지 않는 농가로 나눠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17농가 중에서 왜 5농가만 전북농업기술원에 검사를 의뢰했는가? 이 경우 개별 농가들이 검사를 의뢰해야 농업기술센터에서 대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종묘업체가 “수확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제안하는 상황에서 나중을 위해서라도 검사를 의뢰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검사를 통해 17농가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종묘업체와의 협상도 책임있게 진행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둘째는 피해농가의 대응이 왜 하나로 모이지 않고 두 부류로 나눠졌냐는 것이다. 종묘업체의 책임을 요구하는 소수 농가와 계속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다수 농가로 나눠진 것이다.
일부농가들은 “이것은 농가의 의지가 아니라 행정의 의지가 아니었겠느냐”고 추정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일부 농가들은 행정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흥덕면 수박농가들도 농업인상담소에서 일관되게 관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농가들은 일정 정도 관리되면서, 초기에 수박농사를 포기할 정도로 과일썩음병이 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소송에 들어간 농가들은, 모종을 받은 지 10일도 안돼 밭 전체에 병해가 발생했고, 행정에서 지원하는 사업의 대상농가도 아니었다.
행정은 이런 상황에서 육묘업체에 공동대응을 함으로써 논란이 확산되는 것보다는, 계속 농사를 짓고있는 다수 농가의 피해를 잘 무마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고창수박의 이미지를 지켜내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송에 들어간 농가들은 이후 병해 관리나 지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든 모종을 공급한 책임을 육묘업체가 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만큼 피해가 고스란히 농가들에게 돌아왔다. 농사를 지은 농가들은 과일썩음병에 의해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농사를 포기한 농가들은 정당한 요구지만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다.
셋째, 과일썩음병에 대한 대처가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농가에는 병든 모종에 약을 치라고 했고, 어떤 농가에는 병든 모종을 뽑으라고 했다. 고창에서는 농약 중에서 아그리마이신(항생제)과 영일바이오를 권장했지만, 국립농업과학원 이영기 박사는 “일품, 델란케이, 승부처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농가들도 이에 따라 우왕좌왕하면서, 종묘업체에 공동 대응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수박썩음병에 대한 정답은 없다. 따라서 키울 땐 키우더라도 육묘업체에 정당한 책임을 물어야 했던 것이다.
종묘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농가들은 “종묘업체와 농가는 갑을관계인 셈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거의 모든 경우 농가들이 피해를 감당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피해가 생겼을 경우 종묘업체도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전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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